2025년 7월 9일, 미국 성우·모션캡처 배우 노조 SAG-AFTRA 조합원들이 11개월 만에 파업을 끝내는 협약에 투표했다. 찬성률은 95.04%였다. 이번 호가 보는 지점은 그 협약이 어디에 금지를 두지 않고, 어디에 동의를 두었는가다.
2024년 7월 26일, SAG-AFTRA 소속 성우와 모션캡처 배우 약 2,600명이 게임 퍼블리셔들을 상대로 파업에 들어갔다. 끝난 날은 2025년 7월 9일이다. 11개월 동안 부스는 비어 있었고, 신작 게임의 목소리 녹음 일정은 그만큼 밀렸다.
2,600명이라는 숫자에는 성우만 있는 게 아니다. 모션캡처 배우도 함께 들어간다. 게임에서는 목소리와 몸짓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같은 배우가 마이크 앞에서 대사를 녹음하고, 다른 날에는 마커 슈트를 입고 동작을 찍는다. 이번 협약이 두 직군을 한데 묶어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협약 비준 투표 결과는 찬성 95.04%, 반대 4.96%였다. 이 정도 표차는 협상단이 조합원 대부분을 설득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임금은 비준 시점에 15.17% 올랐다. 여기에 2025년 11월과 2026년 11월, 2027년 11월에 각각 3%씩 더 오른다. AFTRA 퇴직기금 기여율도 16.5%에서 17%로, 2026년 10월에는 다시 17.5%로 오른다.
"이 협약은 AI 시대에 배우들의 생계를 지켜줄 필요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다른 중요한 성과들과 함께."
— Duncan Crabtree-Ireland, SAG-AFTRA 사무총장 겸 수석협상관 · 2025.07.09Note 디지털 리플리카는 실존 인물의 목소리나 얼굴, 몸짓을 AI로 그대로 재현한 결과물을 뜻한다. 이번 협약은 리플리카를 만들 때 사전 동의와 고지를 의무로 두었고, 리플리카 제작에 들어간 시간에는 별도 보상을 매기도록 했다. 실시간 생성을 쓸 때는 최저 보상 기준도 함께 올라간다.
이 협약과 Issue 093의 외주 계약 AI 조항은 층위가 다르다. 093은 발주사와 외주사가 개별로 맺은 계약이었지만, 이번 협약은 산별노조가 퍼블리셔 전체를 상대로 맺은 단체협약이다. Issue 089의 사내 노사 협약과도 다르다: 089는 한 회사 안의 절차였고, 여기서는 목소리와 동작의 디지털 리플리카 자체가 대상이다.
파업이 시작됐을 때 업계 바깥에서는 생성형 AI 전면 금지를 결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실제 협약문을 보면 그런 조항은 없다. 대신 들어간 건 두 가지다. 디지털 리플리카를 쓰려면 사전 동의와 고지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조항. 그리고 파업 기간에는 새로운 AI 학습과 생성에 대한 동의를 배우 쪽에서 거둬들일 수 있다는 조항이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조항을 다시 읽으면서 눈에 걸리는 대목이 금지 문장이 아니라 이 한 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파업 중에는 동의를 거둘 수 있다. 이건 단순한 방어 조항이 아니다. 회사가 배우의 목소리나 동작을 계속 새로 학습시키려면, 앞으로도 배우 쪽 동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의는 한 번 서명하면 끝나는 서류가 아니라, 노조가 다시 주거나 거둘 수 있는 절차가 됐다.
왜 이 방식이 금지보다 오래 버티는가. 금지는 한 번 협약서에 박히면 다음 협상까지 그대로 굳는다. 반면 동의를 거둘 수 있는 권리는 파업이라는 실제 행동과 맞물려 있다. 회사가 다음 협상에서 배우 쪽 요구를 무시하면, 배우들은 이미 만들어둔 리플리카의 새 활용에 대한 동의부터 거둬들일 수 있다. 협상 테이블 밖에서도 압력을 걸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편집부가 보기에 이 협약의 무게중심은 성우들이 AI를 막아섰다는 데 있지 않다. 동의라는 절차를 회사가 아니라 노조 쪽이 다시 취소할 수 있게 만든 데 있다. 금지는 한 번 뚫리면 끝이지만, 취소할 수 있는 동의는 매번 새로 협상력을 만든다.
국내 게임 회사에도 성우와 모션캡처 배우가 있고, 이들의 목소리와 동작을 AI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이번 협약이 보여주는 건, 생성형 AI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떻게 동의를 받고 그 동의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쪽이 더 오래 버틴다는 사실이다.
당신 팀에도 성우나 모션캡처 배우와 계약을 맺는 담당자가 있다면, 지금 가진 계약서에 "AI 금지" 한 줄만 넣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만하다. SAG-AFTRA가 11개월을 들여 얻어낸 건 그 한 줄이 아니라, 동의를 계속 살아 있는 절차로 만드는 조항들이었다.
실무적으로 옮기면 이렇다. 리플리카를 만들기 전에 동의와 고지 절차를 문서로 남긴다. 리플리카 제작에 들어간 시간을 별도로 계산해 보상한다. 그리고 동의를 한 번 받았다고 끝내지 않고, 상황이 바뀌면 배우 쪽이 다시 확인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둔다. 셋 다 금지 조항 하나를 넣는 일보다 손이 많이 가지만, 분쟁이 생겼을 때 훨씬 덜 흔들린다.
파업이 시작됐을 때 우리도 결국 핵심은 AI 금지 조항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번 자료를 다시 보니 그 짐작은 틀렸다. 협약의 핵심은 금지가 아니라, 동의를 누가 쥐고 있는가와 그 동의를 언제 거둘 수 있는가였다.
AFTRA 퇴직기금 기여율 조정이나 3년에 걸친 임금 인상도 이번 협약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내 독자에게 가장 유용한 대목은 이 동의 구조다. 계약서에 금지 조항 하나를 넣는 일보다, 동의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게 할지를 정하는 일이 앞으로 더 자주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 Desk γ크래프톤의 AI First 전환 예산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