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TF Magazine Issue 096  ·  Briefing 2026 · September · 23
Issue 096 — Briefing

크래프톤은 GPU에 1,000억, AI 툴에 매년 300억을 적었다

2026년 2월 23일, 크래프톤은 사내 소통 프로그램에서 회사의 미래를 AI 앞에 걸었다. 문서에는 금액과 날짜가 박혀 있었고, 그중 개발자가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가장 큰 숫자가 아니었다.

눈 덮인 대학 캠퍼스 안뜰, 밀봉된 서버 상자를 실은 손수레가 불 켜진 석조 건물에서 멀어지며 눈 위에 바퀴 자국을 남기고 있다
Cover · Issue 096 — 종신교수직이 있던 캠퍼스에서 서버가 실려 나가는 저녁. TSTF MAG · 2026
§ 01 — Signal

스스로를 게임사라 부르지 않기로 한 날

2026년 2월 23일, 크래프톤은 사내 소통 프로그램 '크래프톤 라이브 토크'에서 「AI First 기업으로의 전환: 일과 회사, 개인의 미래」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크래프톤은 중장기 비전과 로드맵을 공유하며 'AI First 기업 전환'을 선언했다. 대표는 김창한이다.

선언은 구호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크래프톤 공식 프레스룸에 올라온 자료를 그대로 확인했는데, 로드맵에는 감상이 아니라 금액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GPU 클러스터에 약 1,000억 원, 2026년부터 매년 약 300억 원의 AI 툴 예산, 그리고 2026년 하반기까지 전사 AI 운영 인프라를 완성한다는 목표까지.

이 인프라는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AI 연동 워크플로우, 기존 업무 시스템 안에 AI가 끼어들어 결재·문서·데이터를 오가는 통로다. 둘째는 Agentic AI 관리 플랫폼, 사람이 매번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작업을 이어가는 AI 에이전트를 회사 차원에서 붙잡아 두는 장치다. 셋째는 데이터 표준화 체계,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회사 안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셋 다 눈에 띄지 않는 인프라지만, 이게 없으면 앞의 두 숫자는 각자 흩어진 도구 구매로 끝난다.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스스로를 게임사라고 부르지 않기로 결정한 날치고, 문서는 꽤 건조했다.

§ 02 — 숫자로 본 전환

이 선언에 붙은 네 자리 숫자

발표문에 적힌 숫자만 추리면 이렇다.

GPU 클러스터 1,000억 원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투자액. 회사가 직접 사서 깔아 둔 돈이다.

AI 툴 예산 매년 300억 원

2026년부터 편성. 구성원이 AI 툴을 직접 골라 쓰라고 붙인 돈이다.

인프라 완성 목표 2026년 하반기

AI 연동 워크플로우·Agentic AI 관리·데이터 표준화 체계를 이때까지 끝낸다.

신규 채용 계약 3개월

AX·FDE 인력의 최초 계약 기간. 연장 여부는 성과로 다시 정한다(서울경제 보도 기준).

§ 03 — Face

종신교수직을 내려놓고 온 사람

이 선언에는 얼굴도 하나 붙었다. 크래프톤은 게임업계 최초로 CAIO, 최고인공지능책임자 직을 신설하고 이강욱을 AI본부장 겸 CAIO로 앉혔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종신교수직을 사임하고 합류했다.

종신교수직은 한 번 얻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자리다. 미국 학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함으로 통하고, 그만큼 내려놓기 어려운 자리로도 통한다. 그 자리를 내려놓고 게임회사로 옮겨 왔다는 사실 자체가, 크래프톤이 이 조직에 얼마나 무게를 실었는지를 회사가 내놓은 보도자료의 어떤 문장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조직도로 봐도 이례적이다. 게임업계에 CAIO라는 직함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고, 신설된 자리는 보통 기존 조직 아래에 붙는데 이번엔 본부장급으로 올라왔다. 직급이 아니라 사람이 바뀐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 04 — 편집부가 읽는 숫자

1,000억이 아니라 300억

이 선언에서 개발자가 읽어야 할 숫자는 1,000억이 아니라 300억이다. GPU는 회사가 사는 것이고, 매년 300억은 "너희가 도구를 직접 쓰는 데 쓰라"고 적힌 돈이다. 도구를 고르는 권한이 예산과 함께 내려온 적은 드물다.

§ 05 — 결재선 위가 아니라

쓰는 사람 쪽에 붙은 예산

설문에서 36%가 이미 업무에 생성형 AI를 쓴다고 답하던 사이, 한 회사는 예산표에 300억을 적었다.

보통 새 도구를 들이는 결재는 팀장 선에서 막히거나, 예산 시즌까지 미뤄지거나, 결국 '전사 표준 도구'로 정리되면서 현장이 원하던 도구와 달라진다. 여러 회사의 개발 조직을 취재하며 되풀이해 들은 이야기다.

매년 300억이라는 예산의 특이한 점은 액수가 아니라 붙는 위치다. 크래프톤의 발표에 따르면, 이 돈은 구성원이 AI 툴을 직접 쓰도록 지원하는 데 쓰인다. 조직도 위쪽이 도구를 정해서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고르는 구조라는 뜻이다.

다만 이게 실제로 그렇게 굴러갈지는 아직 모른다.

예산이 편성됐다는 것과, 그 예산을 개발자 한 명 한 명이 자기 판단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편집부는 이 지점을 이번 호의 진짜 관전 포인트로 본다. 300억이 다시 부서장 승인 절차 안으로 흡수되는 순간, 이 선언은 GPU 1,000억과 똑같은 '회사가 사는 인프라'로 되돌아간다.

§ 06 — 조건 없는 채용

학력도 경력도 안 보고 뽑는다는 실험

서울경제와 뉴스핌이 지난 3월 보도한 내용은 조금 다른 결의 실험이다. 크래프톤은 학력과 경력을 보지 않는 AX(인공지능 전환) 엔지니어와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채용을 시작했다. FDE는 개발 조직이 아니라 기획·아트·QA 같은 비개발 조직에 파견돼 그 팀의 업무를 AI로 바꾸는 일을 한다. 크래프톤이 FDE를 뽑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계약 형태는 단정적이다. 3개월 계약직으로 먼저 들어와서, 성과가 나오면 그때 연장을 논의한다. 급여는 개발 직군 대졸 초임을 웃도는 월급에 성과급이 붙는다. 편집부는 이 조건을 '시험 삼아 싸게 써 보는 채용'으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크래프톤이 이 직군의 성과를 무엇으로 잴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읽는다. 3개월은 그 기준을 만드는 동안 회사가 벌어 두는 시간이다.

당신 팀에도 비슷한 사람이 곧 배치될 수 있다. 학력도 경력도 안 보고 뽑힌 사람이 당신의 워크플로우를 들여다보겠다고 하면, 처음 할 일은 그 사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왜 지금 그렇게 일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학력·경력 무관."

— 서울경제, 2026년 3월 크래프톤 AX·FDE 채용 보도
Previously — 지난 호
Issue 095
"AI는 도둑질이다. 안 쓰면 잘린다"

같은 조사에서 36%가 이미 AI를 쓴다고 답했다 — GDC 2026 State of the Game Industry, 부정 52% vs 사용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