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기본법이 시행됐다. 법조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표시를 어디에 붙이나"가 아니라 "우리가 이 법이 말하는 인공지능사업자인가"였다.
인공지능기본법 시행 이후, 법무법인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의 순서가 특이하다. 사업자 대부분이 처음 묻는 말은 표시 문구의 위치가 아니라 자신의 법적 위치다.
"인공지능법상 의무가 적용되는 사업자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 정호선 ·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정호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게임사들이 준비 없이 이 절차에 들어가는 경우를 자주 본다고 말한다. 인공지능기본법 제31조·제36조·제43조는 AI 생성물에 대한 고지 의무와 그 위반 시 과태료 3,000만원 이하를 규정한다. 다만 그 의무가 걸리는 대상인지부터 스스로 가려내야 다음 단계인 표시 방식 논의로 넘어갈 수 있다.
해외 사업자에게는 숫자로 된 문턱도 있다. 전년도 전체 매출액이 1조원 이상이고 AI서비스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이면서 일일 국내 이용자가 100만명 이상인 경우, 별도 의무가 추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태료 적용에 최소 1년 이상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급하게 벌금을 물릴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게임업계에서 생성형 AI는 이미 여러 자리에 들어와 있다. NPC 대화 생성, 컷신 초안, QA 자동화까지 쓰임새가 넓다. 문제는 이 중 어느 것이 법이 말하는 '인공지능서비스'에 해당하는지, 회사 스스로도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호선 변호사가 말한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문장은 그래서 원론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숙제로 읽힌다.
몇 주 전 이 지면은 출하 직전 제출 폼의 고지 칸을 다뤘다. 그때는 회사가 이미 '개발사'로 확정된 상태에서 플랫폼에 낼 서류의 빈칸을 채우는 일이었다. 이번은 다르다. 인공지능기본법은 회사가 스스로를 어디에 넣을지부터 판단하라고 요구한다.
그 판단이 서류함이 아니라 이용자가 플레이 중에 보는 화면 쪽으로 곧장 들어온다는 점이 이번 사안의 무게다. 사내 노사가 마주 앉아 정하는 절차와도 다르다. 이건 회사 밖에서 만들어진 분류 기준이, 회사 안의 논의보다 먼저 도착한 경우다.
두 사안을 헷갈리면 대응 순서도 꼬인다. 서류 칸을 채우는 일은 법무팀이 마감 하루 전에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자 여부를 가리는 일은 그렇게 못 한다. 기획팀이 어떤 AI 기능을 이용자 화면에 노출하는지부터 다시 정리해야, 법무팀이 그 위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취재 중 만난 쟁점은 세 갈래로 갈렸다.
내부 개발도구 AI와 이용자 서비스 AI의 구분. 기획팀이 사내에서만 쓰는 AI 도구와 플레이어가 직접 만나는 AI 서비스는 같은 법 안에서도 다르게 취급될 수 있다.
NPC 대화창의 표시 시점. 대화할 때마다 문구를 띄울지, 게임 시작 화면에서 한 번에 일괄 고지할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스크린샷·공유 화면의 표시 범위. 이용자가 저장한 화면에 AI 요소가 남아 있을 때, 그 표시 의무가 이용자에게까지 넘어가는지가 남은 질문이다.
표시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문구일 필요는 없다. 기계가 인식하는 비가시적 워터마크도 인정된다. 화면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의무를 채우는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그 판단의 출발점은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인공지능사업자인가.
법무법인 화우 쪽에서는 모든 콘텐츠마다 표시를 붙이는 방식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문구를 매번 띄우면 게임의 몰입 경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고 표시를 뭉개면 이용자 알 권리 쪽이 비게 된다. 이 저울질은 아직 누구도 끝내지 못했다.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은 아직 정리 중이다. 완성 시점을 못박은 보도마다 표기가 갈려서, 이 지면도 날짜를 걸지 않는다.
지금 확인되는 건 시행일과 조항, 과태료, 매출 기준뿐이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논의를 게임물관리위원회 심의 절차와 나란히 놓고 본다. 표시 의무가 심의 항목에 얹히는 순간, 지금의 심의 문답지에 칸 하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기본법은 AI에 대한 신뢰와 이용자 알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산업과 정부가 함께 기준을 만들어가는 법"
— 김종일 ·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의 말대로, 이 법은 산업과 정부가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중인 법이다. 아직 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동시에 게임업계가 목소리를 낼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편집부가 보기에 지금 각 스튜디오가 급하게 결정할 일은 표시 문구의 폰트가 아니다. 우리 회사의 AI 활용이 이 법의 사업자 정의 어디에 걸리는지, 그 답부터 회의 안건에 올리는 일이다. 당신 팀의 AI NPC 기획서에도 이 질문이 아직 안 적혀 있다면, 지금이 적어 넣을 때다.
비용도 걸린 문제다. 표시 방식을 나중에 통째로 갈아엎는 것보다, 기획 단계에서 노출 범위를 미리 정해두는 쪽이 싸게 먹힌다. QA 일정에 '표시 확인' 항목 하나를 넣어두는 정도로도 나중의 재작업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처음엔 표시 방법이 핵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법조계 취재를 거듭할수록 핵심은 그 앞 단계, 그러니까 스스로를 인공지능사업자로 규정하는 판단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지난 몇 호에서 다룬 절차 이야기들과 결이 다른 지점이 여기다. 그때는 회사 안의 합의를 다뤘고, 이번은 회사 밖에서 도착한 잣대를 다룬다.
결론을 내리기엔 시행령이 아직 비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판단을 법무팀에만 미뤄두는 회사와, 기획·프로그램·QA가 같이 들여다보는 회사는 다음 분기의 대응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다시 읽어보니, 이번 호의 사건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표시를 잘 붙이는 회사가 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부터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Desk 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