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트업의 뮤직비디오에 댓글 8,300개가 달렸고, 6주 뒤 레벨5의 쇼케이스가 같은 길을 갔다. 두 회사 대표는 거의 같은 문장으로 해명했다.
2026년 7월 31일, 시프트업이 신작 '스텔라 블레이드: 블러드레인'의 뮤직비디오 「Wanna be in LOVE」를 공개했다.
이번에 읽은 조선비즈 기사에서는 공개 일주일 안에 댓글이 8,300여 개 붙었다고 적었다. 골자는 하나였다. AI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동작과 표정, 어색하게 끊기는 화면 전환. 이용자들은 이걸 그냥 "AI 슬롭"이라고 불렀다.
뮤직비디오는 원래 정식 트레일러보다 가볍게 소비되는 콘텐츠다. 그런데도 논란이 하나로 굳어졌다는 건, 이용자의 반응 기준이 영상의 무게와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가 X에 올린 해명은 이랬다.
"AI는 회사가 만든 데이터와 디자인,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는 도구로 사용됐다."
— 김형태 · 시프트업 대표 · X 게시글, 2026.08 (조선비즈 보도)같은 글에서 그는 캐릭터가 자사 아티스트와 모델러들이 1년 넘게 매달려 만든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란이 시프트업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같은 기사는 두 사례를 나란히 짚었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에서 말 다리가 세 개로 보이는 장면 때문에 AI 의혹을 받았고, 공식 사과 뒤 장면을 수정했다. 넥슨은 '아크 레이더스'에 TTS 음성 생성 AI를 쓴 것이 역풍을 맞아 대사 일부를 다시 녹음했다. 한 기사 안에 이 정도 사례가 함께 실렸다는 것부터가, 이게 한 회사만의 위기 대응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였다.
기사에 인용된 업계 관계자의 분석은 이렇다. 이용자는 완성도만 따지는 게 아니라, 인간 창작자의 손길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 IP 기반 팬덤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 더 예민하다.
이 논란에서 편집부 눈에 띈 건 반응이 굳어지는 속도다. 신작 홍보 영상 한 편이 올라온 지 채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여론은 이미 하나의 결론으로 모여 있었다. 김형태 대표의 해명글은 그 뒤에 올라왔다. 댓글 창은 이미 8,300개를 넘긴 다음이었다.
2026년 9월 10일, 레벨5는 온라인 쇼케이스 「Level5 Vision 2026 II: Dreams」를 열었다.
레이튼 교수와 이상한 마을 리메이크, 요괴워치 2, 이나즈마 일레븐, 데카폴리스가 차례로 공개됐다. 그런데 팬들이 먼저 짚은 건 게임이 아니라 화면이었다. Kotaku가 정리한 목록만 봐도 요괴워치 주인공 얼굴이 장면 사이에서 갑자기 바뀌었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캐릭터 위치가 튀었다. 펜이 쓰는 글씨는 펜을 따라가지 않았고, 조명은 곳곳에서 어긋났으며 배경 구조물은 뒤틀려 있었다. 일부 이용자는 데카폴리스 구매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히노 아키히로 레벨5 대표가 X에 올린 성명 중 두 문장이다.
"이번에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이해하기 쉬운 발표를 전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AI를 광범위하게 활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 히노 아키히로 · 레벨5 대표 · X 성명, 2026.09 원문: "we cannot deny that we made extensive use of AI this time, driven by a desire to deliver a presentation that was visually striking and easy to grasp""시나리오와 캐릭터 디자인, 세계관의 기초 설정처럼 작품의 매력과 개성을 규정하는 모든 요소는 전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 히노 아키히로 · 레벨5 대표 · X 성명, 2026.09 원문: "all elements defining the appeal and individuality of our released titles — such as the scenario, character designs, and foundational settings — are created entirely by human hands"그는 AI를 원화를 3D 폴리곤 모델로 바꾸는 것처럼, 사람이 만든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을 간소화하는 데 주로 쓴다고 설명했다. Kotaku는 히노가 2025년에도 자사 코드의 80~90%가 AI로 작성된 뒤 사람이 수정·마무리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시프트업의 해명이 X 게시글 한 장이었다면, 레벨5의 해명은 온라인 쇼케이스 다음에 나온 성명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문장의 뼈대는 같았다. 작품을 규정하는 요소는 사람이 만들었고, AI는 그 결과물을 다듬거나 옮기는 자리에만 있었다는 순서. 회사가 다르고 장르가 달라도, 위기가 닥쳤을 때 꺼내는 문장은 거의 그대로였다.
찾아보니 인사이트코리아의 「게임 AI, 두 얼굴」 연재에 비슷한 장면이 더 있었다. 스마일게이트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 넷마블 '신의 탑: 새로운 세계'도 일러스트 AI 의혹을 받았고, 두 회사 모두 부인했다. 사이게임즈는 2026년 1월 AI 자회사를 발표한 뒤 반발이 커지자, 자사 게임과 콘텐츠에 생성형 AI 결과물을 쓰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같은 기사는 서브컬처 게임의 캐릭터 확정 획득 비용을 함께 짚었다. '블루 아카이브'는 약 40만 원,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약 60만 원이다. 이용자는 이 돈을 내고 얻은 캐릭터를 아이템이 아니라, 창작자 개성이 담긴 작품으로 본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Quantic Foundry가 2025년 10~12월 게이머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다. 어릴수록 더 싫어한다는 숫자가 그대로 나왔다. 13~17세 응답자의 긍정 비율이 3%에 그쳤다는 건, 이 거부감이 나이 든 이용자의 향수나 보수적인 취향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가장 어린 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 타이틀 | 캐릭터 확정 획득 비용 |
|---|---|
| 블루 아카이브 | 약 40만 원 |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 약 60만 원 |
시프트업과 레벨5는 장르가 다르다. 하나는 액션, 하나는 퍼즐과 몬스터 수집이 섞인 타이틀이다. 그런데도 같은 반응을 겪었다는 건, 이 거부감이 특정 장르의 취향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서브컬처 쪽에서는 그 거부감이 40만 원, 60만 원짜리 결제 버튼 앞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두 해명은 문장 구조가 같다. 핵심은 사람이 만들었고, AI는 도구·변환·연출에만 썼다는 순서다. 그런데 이용자가 따진 건 공정이 아니라 관계였다.
우리 데스크는 두 성명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었다. 문장을 겹쳐보니 같은 틀이 보였다. "어디에 안 썼다"는 목록은 사실 답이 아니다. 40만 원을 낸 사람이 확인하고 싶은 건 공정의 순서가 아니라, 자기가 산 캐릭터에 사람 손이 닿았다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해명문의 순서부터 뒤집어야 한다. "누가 만들었다"를 먼저 말하고 "AI는 어디에 썼다"를 그다음에 말하는 순서. 그리고 이 문장은 트레일러가 나간 뒤의 해명이 아니라, 나가기 전의 검수 항목으로 있어야 한다.
당신 팀의 다음 트레일러 검수표에 "AI 티가 나는 프레임" 항목이 있는가. 없다면 이번 두 사건이 그 항목을 채울 이유다.
우리도 지난 87호에서 이 문제를 '고지 서류' 하나로만 봤다. 도구를 쓴 사실을 서류 어딘가에 적어두면 끝나는 문제로 다뤘다. 이번 두 사건을 보고 나니 그 판단을 고쳐야 했다. 여기서 걸린 건 서류가 아니라 프레임 한 장 한 장이었다.
서류는 나중에 확인하면 되지만, 프레임은 관객이 보는 그 순간에 이미 판단이 끝난다. 검수표는 그 순간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한다.
두 대표의 해명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요소들은 실제로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문장이 진실인지가 아니라, 그 문장이 도착한 시점이었다. 트레일러가 이미 퍼진 뒤에 "핵심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해명이지만, 트레일러가 나가기 전에 같은 문장을 검수표에 적어두는 건 약속이다. 이번 호가 두 사건에서 확인한 건 그 둘의 차이였다.
— Desk 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