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안 스튜디오가 얼마 전 컨셉아트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 를 다시 빼기로 했다. 이번 호의 신호는 도입이 아니라 철회 쪽이다.
이번에 읽은 자료는 라리안 스튜디오(Larian Studios) CEO 스벤 빙케(Swen Vincke)가 남긴 답변 하나였다. 회사 공지가 아니라 Reddit AMA, 날것에 가까운 자리였다.
발단은 그 전에 있었다. 빙케는 Bloomberg 인터뷰에서 아이디어 발상, 프레젠테이션 정리, 플레이스홀더 텍스트, 그리고 컨셉아트 몇 군데에 생성형 AI 를 "실험" 중이라고 말했다. 사내에서 조용히 시험해 보던 일이었는데, 그 한 문장이 밖으로 나가자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예상 밖이었다.
빙케가 그때 언급한 건 아이디어 발상부터 컨셉아트까지 전부 완성 결과물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중간 단계였지만, 유독 컨셉아트만 이번에 다시 손으로 되돌아갔다.
며칠 뒤 Reddit AMA 에서 빙케는 다시 입을 열었다. "There is not going to be any GenAI art in Divinity."라고 그는 답했다. Divinity에는 생성형 AI 아트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AMA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하는 자리다. 홍보팀의 다듬어진 문장보다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We've decided to refrain from using genAI tools during concept-art development. That way, there can be no discussion about the origin of the art."
번역: 우리는 컨셉아트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 도구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그 그림의 출처를 두고 논쟁할 일이 없어진다.
— Swen Vincke, Larian Studios CEO · Reddit AMA이 발표가 눈에 띄는 이유는 타이밍인데, 실험을 언급한 인터뷰와 그 실험에 선을 그은 답변 사이의 간격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험해보고 반응을 확인한 뒤 접기까지, 한 사람이 몇 주 안에 그 흐름을 그대로 거쳐 갔다. 빠르게 갔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범위인데, 빙케가 그은 선은 Divinity 전체도, Baldur's Gate 3 이후 스튜디오의 모든 파이프라인도 아니라 딱 컨셉아트 개발 단계 하나였다. 아이디어 발상이나 프레젠테이션 정리에 AI 를 쓰는 것까지 함께 접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 정도로 좁혀 놓으면 이번 결정의 성격이 드러난다. 스튜디오 전체가 AI 를 등지고 돌아선 사건이 아니라, "한 공정만 콕 집어 끈 결정"이다. 도입과 철회가 같은 회사 안에서 나란히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컨셉아트를 콕 집은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다. 출처를 두고 논쟁이 붙는 자리가 바로 거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스케치나 발표 자료는 밖으로 잘 나가지 않지만, 컨셉아트는 마케팅에도, 팬 커뮤니티에도 그대로 노출된다. 이 원칙 하나가, 이번 결정 전체를 설명한다.
이런 식의 선 긋기가 라리안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번처럼 이유까지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는 흔치 않다.
지난 호(087)에서 다룬 건 이미 완성된 게임을 내보내기 직전, 제출 폼에 새로 생긴 "고지 칸"이었다. 여기는 다르다. 아직 만드는 중인 그림을 어떤 손으로 그릴지, 제작 공정 자체를 두고 내린 결정이다. 그 차이가 이번 호를 083·087과 구분 짓는다.
GDC 2026 State of the Game Industry 조사에서, 생성형 AI 가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한 응답이 52%였다. 절반을 넘는 숫자다. 라리안 한 곳의 결정이 아니라, 업계 다수가 이미 같은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근거로 읽힌다.
이 수치를 라리안의 결정과 나란히 놓으면, 이번 철회가 유별난 선택이라기보다 업계 분위기와 맞물린 흐름이라는 인상이 짙어지는데, 스튜디오 하나의 판단이 전체 분위기와 따로 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소식을 도구 하나가 사라진 이야기로 읽지 않았다. "공정별로 스위치가 따로 달려 있다"는 이야기로 읽었다. 리서치나 러프 스케치 단계에서는 AI 를 켜두고, 실제로 화면에 박힐 컨셉아트 단계에서는 꺼두는 조합은 TSTF 안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뿐이다.
지난 호(083)에서는 이런 흐름을 "막히는 자리가 옮겨간다"고 봤다. 이번 자료는 조금 다르게 말한다. 자리가 옮겨가는 게 아니라, "공정마다 켜고 끄는 결정이 따로 내려진다." 편집부는 이쪽이 더 정확한 그림이라고 본다.
당신 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을 것이다. 어느 공정에서는 AI 초안을 그대로 쓰고, 어느 공정에서는 그 초안을 참고만 한 뒤 손으로 다시 그린다. 그 경계선을 누가, 어떤 반응을 보고 그었는지. 질문은 하나였다. 이번 호가 진짜 묻고 싶었던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발표문 한 줄 뒤에 실제로 몇 사람이,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결정이 딱 한 공정에서 멈췄다는 사실 자체가, 이게 즉흥적 선언이 아니라 어느 정도 다듬어진 결정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자료를 하나 더 찾아뒀다. 결국 빼기로 했다. NetEase 와 Running With Scissors 사례였다. 둘 다 눈에 띄는 이야기였지만, 당사자 공지나 본인 발언 같은 "1차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안 된 걸 정성적으로 흐려 쓰는 대신, 이번 호에서는 아예 빼는 쪽을 택했다.
이 판단 기준은 이번 호만의 예외가 아니라, 원 자료의 주장은 그대로 인용하되 편집부가 옆에 붙이는 배경 설명에는 반드시 출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매호 지키려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 원칙 때문에 두 사례가 통째로 빠졌다.
그래서 이번 호는 라리안 한 건과 GDC 수치 하나로 짧게 갔다. 재료가 두 배로 많았다면 더 두꺼운 호가 됐겠지만, 확인 안 된 절반을 채워 넣느니 얇은 채로 내보내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게 전부다.
— Desk γ스토어 제출 폼에 새로 생긴 AI 고지 칸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