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 새로 생긴 것은 이름도, 도구도 아니다. 세션 시작 전에 서명하는 종이 한 장이다. 그 종이에 적힌 문장이 얼마나 구체적이냐가, 나중에 이 목소리로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지를 정한다.
2025년 7월, 1년 가까이 이어지던 게임 성우 파업이 끝났다.
SAG-AFTRA 조합원은 「2025 Interactive Media Agreement」를 찬성 95.04%, 반대 4.96%로 비준했다. 보수는 비준 시점에 15.17% 복리로 오르고, 이후 2025·2026·2027년 11월마다 각각 3%씩 추가로 오른다.
여기까지는 노사 협약 기사에서 흔히 보는 숫자다. 파업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편집부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다른 거다. 협상 테이블 위에, 예전에는 없던 종이 한 장이 새로 놓였다.
1년이라는 기간도 짧지 않다. 그 사이 새 대사를 녹음하지 못한 캐릭터들이 있었고, 이번 협약이 적용되는 스튜디오 아홉 곳은 그동안 협상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그 종이의 이름은 디지털 리플리카 동의서다.
목소리나 외형을 복제한 리플리카를 만들거나 쓰려면, 이제 서면 동의를 미리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계약서 한 줄로 넘어가던 일이, 지금은 별도의 서류 한 장을 따로 요구한다.
예를 들어 동의서에 "본편 대사용"이라고만 적었다면, 그 리플리카를 나중에 홍보 영상이나 후속작에 쓰는 순간 동의는 무효가 된다. 다시 서명을 받아야 한다. 문장 하나를 아끼려다 나중에 두 번 일하게 되는 구조다.
게임 스튜디오 쪽에서 보면 이건 결재 단계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오디오 디렉터가 리플리카를 새 프로젝트에 쓰려면, 예전 동의서에 이번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금지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다. 새로 생긴 건 문서 한 장이고, 그 문서에 얼마나 정확히 썼느냐가 나중에 쓸 수 있는 범위를 정한다.
교섭위원장 세라 엘멀레이(Sarah Elmaleh)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의 "마지막 조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생성형 AI가 배우 본인의 시뮬레이션으로 그 배우를 대신해 파업을 깨는 경우, 거기에 제재가 따르게 만드는 일이 매우, 매우 중요한 조각이었다."
— 세라 엘멀레이(Sarah Elmaleh) · 교섭위원장 · Variety 인터뷰, 2025.07이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협약의 무게중심이 임금 인상표가 아니라 여기 있다고 본다. 엘멀레이가 말한 시나리오는 이런 거다. 배우가 파업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동안, 그 배우의 과거 녹음이 학습돼 새 대사를 대신 만들어내는 상황. 숫자로 남는 건 인상률이지만, 협상단이 마지막까지 붙잡은 건 그 뒤에 있는 이 장면이었다.
이 협약은 아홉 곳의 스튜디오에 적용된다. 이름을 나열해 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류의 효력은 회사 이름 단위로 갈린다.
같은 산업 안에, 반대 방향에서 서류를 쓰는 쪽도 있다.
영국 로펌 브라브너스(Brabners)는 퍼블리셔가 쓰는 개발·퍼블리싱 계약서를 정리하며, IP 관련 "보증(warranty)"과 "배상(indemnity)" 조항이 거의 항상 들어간다고 짚었다. 일부 퍼블리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는다고도 덧붙였다.
SAG-AFTRA의 서류는 동의를 받으면 쓸 수 있다고 열어둔다. 퍼블리셔의 계약서는 아예 쓰지 말라고 닫아버린다. 방향은 반대지만 둘 다 하는 일은 같다. 서류 한 장이 새로 늘어난다.
어느 쪽 서류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어 두었느냐.
TSTF에서도 외부 목소리를 쓰는 일은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때 어떤 문장을 써서 서류를 남길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미리 생각해 둘 만한 문제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변화를 위협이 아니라 절차로 읽는다. 파업 전에는 세션 앞에 이런 종이가 없었다. 지금은 서명란이 하나 늘었을 뿐이다.
다만 그 서명란에 적힌 문장이 "합리적으로 구체적인" 기술인지 아닌지가 이후 몇 년의 사용 범위를 정한다. 대충 쓴 동의서는 나중에 무효가 된다. 구체적으로 쓴 동의서는 오래 간다. 동의서 문장 하나를 다시 쓰는 것보다,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쓰는 쪽이 언제나 싸게 먹힌다.
당신 팀에도 이런 서류가 곧 하나 놓일 것이다. 계약서든 동의서든, 문장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느냐가 나중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은 이 업계에서 이제 흔해졌다.
— Desk γ스토어가 밖에서 붙인 AI 공시 칸, 그 뜻을 우리가 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