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어 페이지 맨 아래, 체크박스가 하나 늘었다. 그 칸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로 회사 밖 사람들은 게임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먼저 읽는다. 그런데 그 칸이 무엇을 묻는지는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
게임을 스팀에 올릴 때, 개발사는 이제 AI 공시 항목을 채워야 한다.
이 항목을 켜면 상점 페이지에 표시가 붙는다. 그런데 이 칸이 정확히 무엇을 묻는지는 개발사가 정하지 않는다. 밸브가 정한다. 그리고 그 정의는 올해 한 번 바뀌었다.
밸브는 2026년 1월 16일 스팀의 AI 공시 양식을 개정했다. 개정 뒤 경계가 또렷해졌다. 코드 자동완성이나 버그 리포트 요약처럼 개발 워크플로용으로 쓰는 도구, 이른바 "AI powered tools"는 공시 대상이 아니다. 공시 대상은 게임과 함께 출하돼 플레이어가 직접 소비하는 생성물뿐이다. 양식 문구로는 두 가지다. "AI to generate content for the game"과 "AI content generated during gameplay". 그러니까 사내에서 코드 보조 도구를 매일 켜 놓고 써도, 스토어의 그 칸은 얼마든지 비어 있을 수 있다. 같은 사실을 두고 눈금이 두 개인 셈이다.
개정 전 양식에서는 이 경계가 흐렸다. 개발 과정에서 쓴 도구까지 뭉뚱그려 걸리는 경우가 있었고, 그래서 어떤 회사는 코드 보조 도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공시란을 켜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은 그 고민이 사라졌다. 대신 다른 고민이 생겼다. 경계는 또렷해졌는데, 그 경계를 아는 사람은 스토어 밖에 별로 없다.
"the directives were significantly rewritten, presumably to offer more clarity for developers"
"지침이 상당 부분 다시 쓰였다. 아마 개발자들에게 더 분명한 기준을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 사이먼 칼리스(Simon Carless) · 게임 시장분석사 GameDiscoverCo 창업자밸브의 정의를 아는 사람에게 빈 칸은 "이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직접 만나는 생성물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의를 모르는 사람에게 같은 빈 칸은 "이 회사는 AI를 안 쓴다"는 뜻으로 읽힌다. 둘 다 그 칸을 정확히 봤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이 재는 대상은 서로 다르다.
회사 안에서 코드 보조 도구를 쓰는 일과, 게임 안에 들어가는 텍스처나 음성이 생성형 AI로 만들어지는 일은 밸브의 정의에서 다른 칸에 속한다. 전자는 공시할 필요가 없고, 후자만 공시 대상이다. 그런데 스토어 밖에서 이 게임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 구분을 모른다. 체크박스 하나로 회사가 AI를 얼마나 쓰는지 통째로 판단하려 한다. 판단의 재료가 애초에 그 칸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이 칸은 "AI를 썼는가 안 썼는가"를 묻는 칸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소비하는 생성물이 있는가"를 묻는 칸이다. 두 질문은 겹치지만 같지 않다. 전자로 이 칸을 읽으면 빈 칸이 결백의 증거처럼 보이고, 후자로 읽으면 그저 한 항목의 답일 뿐이다. 같은 칸을 두고 이렇게 다른 무게를 얹는 건, 결국 질문 자체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그 칸의 뜻을 정하는 곳은 우리가 아니다. 밸브가 정하고, 이미 올해 한 번 그 정의를 바꿨다. 다음 개정이 언제 올지, 그때 이 칸이 다시 무엇을 묻게 될지는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체크박스를 켜는 개발사 자체는 늘고 있다. 스팀 넥스트 페스트 데모 가운데 AI 공시를 켠 비율이 2026년 2월 750개(21.2%)에서 6월 1,163개(26.5%)로 올랐다. GameDiscoverCo가 같은 데모 풀, 같은 방법론으로 두 회차를 나란히 잰 값이다.
그런데 업계 종사자들에게 물으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GDC의 「State of the Game Industry 2026」에서 생성형 AI가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한 종사자가 52%였다. 1년 전엔 30%, 2년 전엔 18%였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7%로, 1년 전 13%보다 오히려 내려갔다. 직군별로는 비주얼·테크니컬 아트 64%, 게임 디자인·내러티브 63%, 프로그래밍 5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회사의 52%는 프로덕션에 생성형 AI를 이미 쓰고 있다고 답했다. 52 대 52. 쓰는 비율과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같은 숫자로 나란히 서 있다. 체크박스는 늘고, 표정은 굳는다. 두 그래프가 같은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그림이 보인다. 스토어의 눈금은 개발사가 얼마나 정직하게 공시하느냐를 잰다. 업계의 눈금은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이 그 도구를 어떻게 느끼느냐를 잰다. 둘 다 같은 해에, 같은 산업 안에서 오른 숫자다. 다만 하나는 상점 칸에 남고, 다른 하나는 설문 응답지에만 남는다.
우리 데스크에서는 이 체크박스를 아직 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다음 신작을 스팀에 올릴 때, 누군가는 이 칸 앞에 서게 된다. 069호에서 다뤘던 사내 허가 도구 목록은 우리가 정한 목록이었다. 이번 칸은 다르다. 목록을 만드는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스토어다.
편집부는 이 칸 자체가 거짓이라고 보지 않는다. 밸브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편집부가 실제로 걸리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그 칸이 답하는 질문과, 스토어 밖에서 사람들이 그 칸에게 던지는 질문이 다르다는 것이다. 빈 칸을 보고 "AI 안 쓰는 회사"라고 읽는 사람에게, 우리가 매일 코드 보조 도구를 쓴다는 사실을 설명할 자리는 그 체크박스에 없다.
당신 팀이 다음 빌드를 스토어에 올릴 때, 그 칸 앞에서 무슨 답을 적을지는 어렵지 않게 정해질 것이다. 정하기 어려운 건 그 답을 밖에서 어떻게 읽을지, 그리고 그 읽는 방식이 내년에 또 바뀔지다.
— Desk γ반영 전 사람 확인 체크박스를 지울지 말지, 회의가 15분 더 붙었던 자리를 다뤘던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