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TF Magazine Issue 069 · Column 2026 · August · 10
결정 · 갈등

목록에
오른 도구.

쓸 수 있는 도구가 목록으로 정해졌다. 그 목록을 쓰는 책상과 목록을 지키는 책상은 같은 층에 없다.

공방 도구벽을 눈높이에서 넓게 담은 장면. 모든 도구 자리에 검은 윤곽이 그려진 대형 그림자보드가 걸려 있고, 절반 가량의 윤곽에는 실제 손도구가 채워져 있지만 나머지는 비어 있다. 보드 하단 3분의 1을 가로질러 갈바니즈 철망 게이트가 닫혀 있고, 화면 앞쪽엔 사람 없는 무인 체크아웃 카운터가 놓여 있다. 인물은 없다.
그림자보드 절반은 채워졌고, 절반은 비어 있다. Cover · Issue 069
§ 01

3년 만에 생긴 물건.

며칠 전 이번 호를 준비하며 읽은 자료가 있다. GDC가 매년 내놓는 업계 실태 조사, 2026년판 State of the Game Industry다. 응답자는 2,300명이 넘는다.

사내에 AI 사용 정책을 갖춘 회사의 비율은 2024년 51%, 2025년 64%, 2026년 78%다. 3년 사이 절반에서 넷 중 셋으로 늘었다.

정책 안쪽을 나눠보면 더 흥미로운 그림이 나온다. 전면 금지는 16%, 사용을 의무로 정한 곳은 6%, 선택 사항으로 열어둔 곳은 28%다. 그리고 "일부 도구만 허용" — 이 호에서는 이걸 그냥 목록이라 부른다 — 이 7%에서 22%로, 3년 사이 3배 늘었다.

목록이라는 형태 자체는 낯설지 않다. 사내 보안 정책이 오래전부터 써온 화이트리스트 방식과 닮았다. 다만 이번에 오르내리는 물건은 백신이 아니라, 하루 몇 시간씩 손에서 놓지 않는 도구라는 점이 다르다.

선택 사항으로 열어둔 28%, 의무화한 6%까지 더하면 어떤 형태로든 AI를 다루는 회사는 이미 다수다. 그 다수 안에서 금지도 전면 허용도 아닌 제3의 형태, 곧 목록을 고른 곳이 가장 빠르게 늘었다. 이번 조사 자체가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여기 적힌 숫자는 남의 업계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호가 보려는 건 그 늘어난 목록이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가다.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이 결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목록은 만들어진 뒤에도 이름이 오르고 내리며 계속 고쳐진다. 그 고쳐지는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가 이번 호가 보고 싶은 것이다.

§ 02

목록에 오른 이름들.

목록에 오르는 이름은 대체로 셋 중 하나다. ChatGPT가 74%, Google Gemini가 37%, Microsoft Copilot이 22% — 셋 다 생산성 LLM이고, 결과물을 통째로 완성해주는 도구는 명단에 잘 보이지 않는다.

쓰는 목적을 보면 이유가 보인다. 리서치와 브레인스토밍이 81%로 압도적이고, 일상 업무와 코드 보조가 각각 47%, 프로토타이핑이 35%다. 에셋을 직접 생성하는 데 쓴다는 응답은 19%에 그친다. 목록이 통과시키는 건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거드는 도구"다.

사내 절차도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 새 도구를 쓰고 싶으면 먼저 목록에 올려달라고 신청서를 넣고, 그 신청이 보안·라이선스 검토를 통과해야 실제로 켤 수 있다. 신청서가 묻는 건 "얼마나 거드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새로 노출하는가"다. 그래서 목록을 통과하는 기준과 파트가 실제로 원하는 기준이 종종 갈린다. 아트 파트가 매일 여는 이미지 생성 창과, 목록에 붙은 이름표가 겹치지 않는 자리는 드물지 않다.

심사 기준이 파트마다 다른 필요를 다 담지 못하는 게, 이번 호가 보는 첫 번째 갈등이다. 선택 사항으로 열어둔 회사엔 이 절차가 없다. 쓰고 싶은 사람이 그냥 켜면 그만이다. 목록을 택한 회사는 그 대신 통과와 대기라는 단계를 하나 더 넣은 셈이다.

프로그래밍 파트는 저장소에 바로 붙는 코드 어시스턴트를 신청서에 적어 넣는다. 아트 파트는 이미지 생성 도구를 적어 넣고, 저작권과 데이터 반출을 묻는 칸 앞에서 손이 멈춘다. 같은 양식인데 걸리는 칸이 서로 다르다.

심사하는 쪽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신청서 뒤의 위험을 먼저 살피는 게 그 자리의 일이다.

§ 03

그런데 그 회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회의실과, 그 이름을 매일 열어보는 파트 데스크는 같은 층에 없다. 회의실은 신청서를 보고, 데스크는 화면을 본다. 다음 장은 그 거리를 숫자로 잰다.

§ 04

회의실과 데스크의 온도차.

생성형 AI가 업계에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52%다. 1년 전엔 30%, 그 전엔 18%였다. 2년 사이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반대로 긍정 응답은 7%뿐인데, 경영진만 따로 떼어보면 19%로 뛴다. 파트별로 나누면 온도차가 더 갈린다. 비주얼·테크니컬 아트가 64%, 게임 디자인·내러티브가 63%, 프로그래밍이 59% — 만드는 손에 가까운 자리일수록 부정이 짙다.

정책을 가진 회사가 78%까지 늘었다는 앞 장의 숫자와, 부정 응답 52%라는 이 장의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정책이 있다고 해서 그 정책에 대한 불신이 줄지는 않는다.

"Why would I replace human creativity with a regurgitated amalgamation of everything that's come before?"

이전의 모든 것을 되씹어 뭉친 것으로 사람의 창의성을 대체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뜻이다.

— GDC 2026 설문에 응답한 미국의 한 시니어 개발자, Game Developer 보도문 인용

편집부도 처음엔 이 흐름을 금지냐 허용이냐의 문제로만 봤다. 다시 보니 진짜 갈림은 그 사이에 있는 목록 쪽이었다.

다음은 편집부가 자료를 읽으며 정리해본 대조다 — 실제 회의록이 아니라 관찰의 요약이다.

회의실이 보는 목록 데스크가 보는 목록
통과 기준 보안 · 라이선스 · 데이터 반출 실제 작업 속도
성공의 표시 신청서 처리 건수 켜기까지 걸린 대기 시간
참석자 정책 · 보안 · 법무 그 도구를 매일 쓰는 사람
갱신 리듬 정해진 주기의 검토 바로 다음 작업에 필요한 도구

이 표가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갱신 주기를 정해두고 모이는 회사에서, 파트가 그날 필요한 도구는 보통 그날 필요하다. 회의실의 리듬과 데스크의 리듬이 애초에 다른 속도로 돈다는 것 — 이게 온도차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

목록을 쓰는 회의실의 긍정(19%)과 그 목록을 받아 쓰는 파트 데스크의 부정(59~64%)은 같은 도구를 두고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목록 갱신 회의에 그 도구를 매일 켜는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은 자리를 떠올려보자. 회의에 오르는 건 사용 로그와 보안 검토 결과이고, 매일 그 도구의 버튼을 누르는 손은 회의실 밖에 있다. 당신 팀에도 이런 자리가 있을 것이다 — 도구 하나를 목록에 올리거나 빼는 자리에, 그 도구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자리.

이 안건은 그날 회의의 여러 안건 가운데 하나로 지나간다. 목록에서 이름 하나를 지우거나 넣는 결정이 그렇게 짧게, 그렇게 조용히 끝난다.

이 수치들이 말하는 건 간단하다. 목록을 만드는 손과 목록의 적용을 받는 손이 같은 자료를 보고도 다른 결론에 닿는다는 것. 그 결론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목록은 계속 회의실의 눈으로만 갱신될 것이다.

§ 05

그래서, 목록은.

이 온도차를 그대로 두면, 다음 개정 때도 같은 표가 나올 것이다.

목록은 자율성을 뺏는 장치가 아니다. 결정권을 어디에 둘지 미리 그어놓는 선이다. 그 선을 긋는 손과 선 안에서 일하는 손이 다르면, 목록은 현장의 언어가 아니라 회의실의 언어로 쓰인다.

편집부는 이렇게 본다. 목록을 갱신하는 회의에 그 도구를 매일 쓰는 사람 한 명을 고정 좌석으로 앉히는 것 — 이게 이 문서를 회의실의 물건에서 현장의 물건으로 옮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3년 만에 표준이 된 건 목록이라는 물건 자체이지, 그 목록의 내용이 아니다. 내용은 회사마다, 파트마다 계속 바뀔 것이다. 바뀌지 않는 건 그 내용을 누가 정하느냐는 질문이다.

Previously · 지난 호
Issue 068
빨라졌다고 느꼈다

체감과 계측이 서로 반대를 가리킨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