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하루에 한두 시간씩 새는 일이 생겼다. 도구에 배경을 떠먹이고, 내놓은 결과를 되짚어 고치고, 뒤를 치우는 일.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도 세지 않는다.
요즘 하루를 되짚어보면 이상한 시간이 있다. 분명 뭔가를 했는데, 어디에도 적을 곳이 없는 시간이다.
도구에 이번 작업의 맥락을 처음부터 설명해주는 시간. 도구가 내놓은 결과를 다시 읽고 틀린 부분을 찾아내는 시간. 결과가 이상해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디버그하는 시간. 그리고 그 결과를 팀이 쓸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어 뒤를 치우는 시간.
도구를 썼다는 사실만 남고, 그 도구를 쓰기 위해 들인 노동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 편집부 관찰 · 2026.07업계 전반의 조사들을 보면, 사람들이 도구에 맥락을 먹이고 산출물을 감독하고 실수를 디버그하고 뒤를 치우는 데 하루치에 가까운 시간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인정받지도, 예산이 잡히지도, 추적되지도 않는 노동이다.
Note 이런 노동을 부르는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 특정 부서 하나에 속하지 않고 여러 팀을 가로질러 퍼지면서, 누구 하나의 소유물도 아니게 되는 일. 그래서 직무기술서에도, 조직도에도 잡히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 노동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이다. 어제까지 없던 일이 오늘 생겼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으니 누구의 업무 범위인지도 없고,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도 안 보이고, 그 시간에 대한 평가도 없다.
여기서 흔히 하는 오해가 하나 있다. "도구 때문에 일이 늘어서 힘들다"는 한탄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얘기의 축이 다르다. 일이 늘어서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일이 이미 생겼는데 이름이 없어서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누군가 이번 주에 도구가 내놓은 결과를 세 번 고치고, 맥락을 두 번 다시 설명하고, 이상한 출력값의 원인을 한나절 추적했다고 치자. 이 노동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도구 쓰는 거잖아"라는 말 한마디로 뭉개진다. 업무 일지에도, 회고에도, 평가서에도 이 시간은 등장할 자리가 없다.
팀 안에서 이 노동은 특정 부서에 딱 떨어지지 않고 여러 자리를 가로질러 퍼진다. 기획도 조금, 개발도 조금, QA도 조금씩 떠맡는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이건 내 일이다"라고 선을 긋지 못하고, 동시에 누구도 "이건 네 일이 아니니 내가 대신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는다. 소유권이 흐려진 자리에는 대개 가장 성실한 사람 한둘이 조용히 그 시간을 떠안는다.
같은 도구를 쓰는 두 사람이 있다. 한쪽은 맥락을 정확히 넣고 결과를 꼼꼼히 검수해서 팀에 바로 쓸 수 있는 산출물을 낸다. 다른 쪽은 대충 던지고 나온 걸 그대로 넘긴다. 결과물의 품질 차이는 크지만, 그 차이를 만든 노동 자체가 이름이 없으니 "잘했다"는 평가도, "부족했다"는 피드백도 붙을 자리가 없다. 잘하는 사람의 수고가 못 하는 사람의 태만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회사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이 문제는 더 또렷해진다. 사내에서 도구를 쓰는 방식은 이미 업무 흐름과 문화, 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회의가 준비되는 방식, 산출물이 완성되는 속도, 검수가 이뤄지는 순서 — 이런 것들이 조용히 재편되는 중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공식 기록 밖에서 일어난다. 조직개편 문서에도, 직무 정의서에도, 인사 평가 기준에도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변화는 이미 왔는데, 그 변화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Note 업계에서는 5년 전엔 없던 새로운 직군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아직 '직함'이 되기 전이다. 누군가의 일상 업무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이름도 못 얻은 채로 매일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야기는 "자리가 사라진다"는 손실의 눈으로 이 시대를 본다. 지금 이 이야기는 그 반대편에 선다. 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 일이 생겼는데, 그 일에 붙을 이름이 아직 없다.
이 관찰이 맞다면, 이름이 생기는 순간 따라오는 것들이 있다.
빌드가 올라가고, QA 리포트가 나오고, 라이브 운영 대응이 돌아가는 매 순간에도 이 이름 없는 일은 이미 끼어 있다.
도구가 뽑아준 QA 요약을 실제 빌드 상황에 맞게 다시 읽고 고치는 사람이 있다. 라이브 운영 중 도구가 내놓은 이상 징후 리포트를 검증하고 실제 원인을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 기획 문서 초안을 도구로 뽑은 뒤, 우리 게임 맥락에 맞게 처음부터 다시 다듬는 사람이 있다. 이 모든 시간이 지금은 그 사람의 "원래 업무" 속에 조용히 섞여 들어가 있다.
누구의 KPI에도 안 잡히는 자리에서, "그건 그냥 도구 쓰는 거잖아"라는 한마디에 수고가 지워지는 자리에서 —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 차이를 말할 언어가 아직 우리에게 없다.
이번 호의 결론은 처방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긴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란다.
도구에 맥락을 먹이는 시간, 결과를 고치는 시간, 뒤를 치우는 시간 — 이 중 어디에 얼마나 쓰고 있는지 스스로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KPI에 넣는 게 맞을까, 아니면 이름 없이 흘러가는 편이 오히려 자유로울까? 이름을 얻는 순간 잃는 것도 있을까?
지금은 격차가 안 보인다. 만약 이 격차를 드러낼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이번 호를 준비하며 편집부 스스로도 이 이름 없는 일을 매주 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원고를 뽑고, 다시 읽고, 어색한 문장을 고치고, 이미지를 다듬고, 링크를 확인하는 시간 — 이 매거진 자체가 그 시간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 시간을 "편집"이라고 부를지, "도구 감독"이라고 부를지, 아니면 아직 이름이 없는 무언가로 남겨둘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이 일이 사라질 거라 기대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형태만 바뀐다. 맥락을 먹이는 수고가 줄면 검수하는 수고가 늘고, 검수가 쉬워지면 판단하는 수고가 남는다.
지금 내가 매일 하지만 어디에도 안 적힌 그 일은, 언제쯤 이름을 얻을까 — 아니면 영영 안 보일까.
— Desk γ기계의 눈이 경기장에 들어온 뒤, 사람의 최종 한마디는 어디에 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