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조직도에 사람 아닌 칸이 하나 생긴다. 이름이 붙고, 담당 업무가 적히고, 관리자가 정해진다. 그 칸을 동료라고 부르는 순간, 무엇이 같이 움직이는가.
어느 날 조직도를 열었는데, 사람이 아닌 칸이 하나 늘어 있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담당 업무가 적혀 있었다. 그 위로 관리자 이름까지 정해져 있었다. 처음엔 농담 같았다. 그런데 회의에서 누군가 그 칸을 가리키며 "걔한테 맡기면 돼"라고 말하는 순간,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됐다.
요즘 여러 회사가 비슷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AI 도구 하나하나를 직원처럼 다룬다. 역할을 정하고, 맡는 일의 범위를 적고, 성과를 따로 센다. 사람 수를 세듯 "AI 몇 명"이라고 센다. 편리한 셈법이다. 그런데 이 편리함에는 조용히 따라붙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칸을 동료라고 부르는 순간, 누군가의 책임이 조용히 가벼워진다.
— 이번 호가 들여다보는 자리흥미로운 실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똑같은 잘못이 섞인 문서를 세 무리에게 보여줬다. 한쪽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한쪽엔 "AI 도구가 만든 것"이라고, 마지막 한쪽엔 "AI 직원이 만든 것"이라고 일러줬다. 같은 문서, 같은 오류였다.
결과가 갈렸다. AI 직원이 만들었다고 들은 무리가 오류를 가장 못 잡아냈다. 같은 실수가 눈앞에 있었는데도, 이름표 하나가 달라지자 잡아내는 손이 무뎌진 것이다.
차이는 작아 보여도 크다. 도구가 틀렸다고 하면 우리는 도구를 의심한다. 결과를 다시 들여다보고, 한 번 더 손을 댄다. 그런데 직원이 했다고 하면, 우리는 사람을 대하듯 한다. 알아서 했겠거니 믿고, 한 발 물러선다. 검수의 날이 한 단계 무뎌진다.
이름은 그저 부르기 편하라고 붙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그 다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먼저 정해 버린다.
도구라고 부르면 우리는 그것을 쓴다. 쓰는 사람이 결과를 책임진다. 동료라고 부르면 우리는 그것과 함께 일한다. 그 순간 책임은 둘 사이 어딘가로 흩어진다. 같은 프로그램인데, 부르는 말 하나가 달라지자 책임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동료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일이 잘못됐을 때 기댈 핑계가 하나 생긴다. "그건 걔가 한 거라." 사람 동료한테는 쉽게 못 할 말이지만, 이름만 사람인 칸에게는 슬그머니 떠넘기게 된다. 새 동료가 생긴 게 아니라, 새 희생양이 생긴 셈이다.
이 프레임을 잠시 받아들이면 몇 가지가 따라온다.
우리도 이미 그 자리에 와 있다. 빌드를 돌리고, QA 결과를 요약하고, 라이브 지표를 밤새 지켜보는 일을 사내 에이전트에 맡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 에이전트에 이름을 붙였다. 부르기 편하니까. 그런데 이름이 붙은 순간부터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장애가 났을 때 "걔가 놓쳤네"라는 말이 나온다. 패치 노트에 이상한 문장이 섞였을 때 "걔가 쓴 거라"라는 말이 나온다. 틀린 건 프로그램인데, 추궁의 화살은 이름 붙은 칸으로 날아가고, 정작 그걸 검수했어야 할 사람은 한 발 물러선다.
그 칸 옆에는, 책임지는 사람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어야 한다.
— § 05 For Us그러니 질문은 "에이전트에 이름을 붙이지 말자"가 아니다. 이름은 편하고, 편한 건 좋은 것이다. 진짜 질문은 이거다 — 그 에이전트의 산출물을 끝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직도에 그 칸을 올릴 거라면, 같이 정해 둘 게 하나 있다. 그 칸 옆에, 책임지는 사람 이름 하나.
이번 호의 결론을 당신에게 미룬다. 답은 정해두지 않았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라는 질문들이다.
그 산출물이 틀렸을 때, 당신은 누구를 먼저 보게 되는가 — 그 칸인가, 아니면 그걸 검수한 사람인가?
같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고 무엇을 바꾸는가?
그 칸의 실수인가, 그 칸을 맡긴 사람의 실수인가? 우리 조직은 그 답을 적어 두고 있는가?
이번 호는 조직도에 늘어난 한 칸에서 출발했다. 사람 아닌 일꾼에게 이름을 붙이고, 자리를 주고, 몇 명이라고 세는 흐름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그 자체를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은 협업을 매끄럽게 한다.
다만 호명이 행동을 바꾼다는 점은 짚고 싶었다. 같은 프로그램도 동료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덜 의심하고 더 떠넘긴다. 그 미세한 기울기가 검수의 날을 무디게 하고, 책임의 주소를 흐린다. 잃는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 생긴 칸 옆에 무엇을 같이 적어 둘 것인가의 이야기다.
그래서 결론을 처방으로 닫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그 칸에 붙이는 이름은, 책임을 또렷하게 하는가, 아니면 흐리게 하는가. 이 질문을 각자의 팀 조직도 위에 한 번 얹어보길 바란다.
— Desk γ직업이 통째 사라진 자리에서, 그 기능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