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리뷰, 기획 피드백, 팀 회고 — 잘했다는 말의 자리에 AI가 쓴 문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끄럽고 따뜻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격려가 쌓이는 환경에서, 인정의 무게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한 동료가 조용히 말했다. "요즘 코드 리뷰 코멘트가 어딘가 다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코멘트가 많아졌다는 건지, 짧아졌다는 건지. 그런데 계속 들어보니 이런 얘기였다 — "좋은 코멘트들인데, 따뜻하고 매끄럽고. 근데 누가 썼는지 모르는 것 같은."
코드 리뷰만이 아니었다. 기획 피드백 문서에서도, 팀 회고 슬라이드의 "잘한 점" 항목에서도, 슬랙에서 결과물을 공유할 때 달리는 반응에서도. 잘했다는 말의 자리에, 매끄럽고 따뜻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모를 문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호는 그 관찰에서 출발한다. AI가 쓴 칭찬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잘했다"는 말이 팀 안에서 원래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 기능이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본다.
칭찬의 기능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보통 우리는 칭찬을 "긍정적인 피드백"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생각한다. 팀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 좋은 일이 있으면 주고받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런데 칭찬이 하는 일 중에 더 조용하고 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코드 리뷰에서 "이 부분 처리 방식이 깔끔하네요"라는 말이 좋은 이유는, 그 말이 그냥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다. 누군가 그 코드를 실제로 읽었고, 그 안의 무언가를 골라냈고, 그걸 지목해서 말하는 수고를 들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팀 회고에서 "이번 마감 이틀 전 밤새 붙잡고 있었던 거 다들 알잖아"라는 말이 힘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 그 사람이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꺼내는 선택을 했다는 것.
인정의 무게는 말의 내용에서만 오지 않는다. 그 말을 하기까지의 과정 — 관찰, 선택, 표현의 결정 — 에서 온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받는 사람이 느낀다. 정확한 자리를 짚은 칭찬, 조금 거친 문장 안에 담긴 진심, 그 팀 안에서만 통하는 맥락 — 이런 것들이 그 말을 "진짜로 만드는" 요소였다.
문장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매끄럽고, 더 따뜻하고, 더 잘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동료가 쓴 건지 AI가 쓴 건지 — 알 수 없다면. 무게가 달라진다. 관찰이 있었는지 모른다. 선택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 수고가 있었는지 모른다. 문장만 남고, 그 문장을 만든 과정이 불투명해진다.
인정의 무게는 말의 내용에서만 오지 않는다. 그 말을 하기까지의 선택에서 온다.
— 편집부 관찰칭찬이 비슷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 갈래가 있다.
| 형식의 균질화 | 기능의 희석 | |
|---|---|---|
| 무엇이 변하나 | 표현 방식이 비슷해진다 | 인정이 하던 일이 약해진다 |
| 심각도 | 형식은 바뀌어도 내용이 진짜면 됨 | 내용만으로는 회복이 안 됨 |
| 받는 사람 입장 | 글이 잘 쓰여 있어 좋음 | 이게 진짜 관찰인지 모름 |
| 시간이 지나면 | 익숙해져 불편함이 사라짐 | 신호의 가치가 천천히 사라짐 |
편집부는 두 번째 해석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이건 "AI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도구가 만드는 형식이 그 형식이 원래 하던 기능을 희석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주의가 필요한 변화다. 특히 그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정착될 때.
Note 형식 균질화 해석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좋은 표현 도구가 보급되면 글의 형식이 비슷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칭찬과 인정은 내용만이 아니라 과정이 함께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일반 문서 작성과 성격이 다르다.
기능 희석 해석이 맞다면, 팀 안에서 몇 가지가 조용히 바뀌고 있다.
게임 개발 팀은 피드백의 밀도가 높은 환경이다. 코드 리뷰가 있고, 아트 디렉션이 있고, QA 보고가 있고, 스프린트 회고가 있다. 한 주에 받는 피드백의 양이 적지 않다. 그 피드백 중에 잘했다는 말도 많다.
이 환경에서 AI가 만든 피드백 문장이 섞이기 시작할 때,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건 AI를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인정이 실제로 하는 일을 도구에게 모두 맡겼을 때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 의도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라져도 모른다.
이번 호의 결론을 당신에게 미룬다. 답은 정해두지 않았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라는 질문들이다.
의심했다면 — 그 의심은 그 칭찬의 무게를 바꿨는가? 의심하지 않았다면 — 앞으로도 구분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직 모르는 걸까?
문체인가, 맥락인가, 타이밍인가? 그 요소들이 AI 도구를 써도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지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의미는 퀄리티에서 오는가, 아니면 과정에서 오는가? 이 둘이 분리될 수 있다면 — 그것은 인정이라는 행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호는 동료의 짧은 관찰에서 시작됐다. "코멘트들이 어딘가 다 비슷해졌다"는 말. 처음엔 그냥 도구가 좋아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해보니, 그 관찰이 가리키는 게 표현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했다"는 말이 팀 안에서 해온 일 — 내가 너를 봤다는 신호, 그 관찰을 선택해서 꺼냈다는 사실 — 은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담겨 있었다. 도구가 그 과정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 내용은 남지만 과정은 불투명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가. 두 가지 방향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의도적인 인정 — 도구를 쓰더라도 자기 관찰을 담으려는 의식적인 선택 — 이 더 희귀해지고 그래서 더 가치 있어지거나. 아니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기능 자체가 천천히 사라지거나.
어느 쪽이 될지는, 지금 이 변화를 알아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 Desk γ슬랙과 PR 코멘트에서 유머와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