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진열대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난다. 쏟아지는 것들 사이에서 고르는 일이 대신 귀해진다. 가치가 만드는 자리에서 골라내는 자리로 옮겨간, 그 이동을 들여다본다.
어제 올라온 것들 옆에, 오늘 또 새로운 것들이 나란히 걸린다. 만드는 손이 늘어난 만큼, 진열대도 끝없이 늘어난다.
예전엔 무언가를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기획하고, 만들고, 다듬는 과정 하나하나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진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일종의 검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이디어 하나를 결과물로 바꾸는 데 드는 품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만큼 진열대에 오르는 문턱도 낮아졌다. 낮아진 문턱 너머로, 온갖 것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게 쌓인 것들 중 대부분은 조용히 묻힌다. 누군가 공들여 올려둔 것이라도, 옆에 나란히 걸린 수많은 다른 것들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다. 올린 것의 절반은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다.
문턱이 낮아진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만큼 진열대 위에서 무엇이 눈에 띄는가가 전혀 다른 문제로 떠올랐다. 만드는 일과 눈에 띄는 일은, 더 이상 같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 해지면, 그 무언가는 흔해진다. 흔해진 것은 더 이상 귀하지 않다. 귀함은 다른 자리로 옮겨간다.
지금 옮겨간 자리는 ‘주의’다. 사람 한 명이 하루에 눈여겨볼 수 있는 양은 예전과 똑같다. 반면 눈여겨볼 후보는 훨씬 많아졌다. 늘어나지 않는 쪽과 끝없이 늘어나는 쪽이 부딪히면, 늘어나지 않는 쪽이 값을 가진다.
‘신뢰’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볼 만한지 스스로 다 확인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대신 걸러주는 존재를 찾는다. 누군가 미리 골라줬다는 사실 하나가, 그 자체로 값이 된다.
Note 큐레이션, 선별, 배분 — 예전엔 만드는 일의 부속품 취급을 받던 이 일들이, 지금은 그 자체로 값을 만드는 일이 됐다.
만드는 게 흔해질수록, 고르는 눈이 귀해진다.
— 편집부 · Issue 060제작 현장에서도 같은 이동이 보인다. 예전엔 ‘무엇을 만들 줄 아는가’가 실력의 기준이었다. 지금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는가’를 결정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
이미지를 뽑아내는 작업도 달라졌다. 한 장을 오래 붙잡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던 방식 대신, 여러 장을 한꺼번에 뽑아 그중 하나를 골라 손보는 방식이 표준이 됐다. 만드는 시간보다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변화가 뜻하는 바는 단순하다. 도구가 손을 대신해줄수록, 남는 일은 판단하는 일이다. 그리고 판단은 아직 도구가 대신해주지 못하는 자리다.
다만 도구는 공평하지 않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이미 아는 손에 쥐여주면 품질을 끌어올리지만, 그런 눈이 없는 손에 쥐여주면 그저 평범한 것들을 양산할 뿐이다. 도구는 의도를 증폭할 뿐, 의도 자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보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더 자주 언급된다. 수많은 후보 중에서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는 눈 — 그 눈에 대한 신뢰가 값을 만든다.
이 신뢰는 한 번에 쌓이지 않는다. 반복해서 고른 것들이 계속 괜찮았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안목에 기대기 시작한다. 안목은 하루아침에 증명되지 않는, 시간이 쌓아주는 자산이다.
우리 제작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에셋과 변형을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나면, 진짜 일은 뽑아내는 일이 아니라 고르는 일로 넘어간다.
‘무한히 만들 수 있으니 다 만들자’는 습관은 쉽게 든다. 하지만 다 만든다고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후보가 늘어날수록,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완성하고 출시하는 일 자체는 예전보다 쉬워졌다. 대신 진열대에 나란히 선 다른 것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일이 새로운 병목이 됐다. 우리가 무엇을 걸었는지가, 만든 것 자체보다 더 크게 말한다.
이번 호는 만드는 능력이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드는 일이 흔해진 자리에서, 무엇이 새로 귀해졌는지를 짚어본 이야기다. 그 다음은 우리 몫으로 남겨둔다.
그 눈이 우리 안에 있는지, 바깥 어딘가에 있는지부터 확인해볼 일이다.
답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면, 그 쏠림부터가 신호일 수 있다.
안목은 매뉴얼로 옮겨지지 않는, 오래 지켜본 사람만 아는 감각에 가깝다.
우리가 오늘 무한히 만들 수 있게 된 그 자리에서, 정작 ‘고를 눈’은 누구에게 맡기고 있는가.
— Desk γ부정행위를 만드는 손과 그걸 막는 눈이 같은 기술을 나눠 쓸 때, ‘정당한 실력’의 경계는 어떻게 다시 그어지는가를 물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