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판에서는, 사람이 기계를 못 이긴 지가 이미 오래다. 그런데 그 판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 오히려 더 세지고, 더 새로워졌다. 기계가 먼저 올라선 자리에서, 사람의 역할은 어디로 옮겨갔을까.
사람이 기계를 더는 못 이기게 된 판이 있다. 그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꽤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판을 두던 사람들은 일을 잃지 않았다.
"사람이 진 그날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은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두기 시작한 첫날이었다."
— 이번 호를 시작하게 한 문장 · 편집부 메모편집 노트 우리가 만드는 것도 결국 게임이다. 그래서 사람이 기계에게 가장 먼저 자리를 내준 오래된 판들은, 우리 일을 비추는 가장 멀리 있는 거울이 된다. 멀리 있는 거울일수록, 가까이서는 안 보이던 모양이 보인다.
보통 우리는 묻는다. "기계가 잘하게 되면, 사람은 사라지는가." 그런데 먼저 진 판의 사람들은 그 질문에 다른 답을 들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건 사라짐이 아니라 옮겨감이다. 이번 호는 그 옮겨간 자리를 따라가 본다.
기계가 사람을 앞선 날, 많은 사람이 같은 예상을 했다. 이제 이 판은 사람의 손을 떠난다고. 둘 이유가 없어진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 예상과 꽤 달랐다. 그 다른 부분을 네 조각으로 나눠서 본다.
기계가 올라선 순간, 사람들은 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기계가 두는 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뒀지"를 묻는 사람이 늘었다. 진 것이 곧 손을 놓는 일은 아니었다. 진 자리에서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를 따라만 했다면 사람은 그저 기계의 흐릿한 복사본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까웠다. 예전이라면 누구도 두지 않았을 낯선 수가 판 위에 늘어났다. 기계가 "이렇게 둬도 된다"는 자리를 열어주자, 사람은 그 열린 자리에서 전에 없던 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계가 이겨야 할 상대, 혹은 두려운 상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기계를 이기려고 마주 앉지 않았다. 밤새 기계와 두면서 자기 약점을 찾고, 안 풀리던 자리를 묻고, 다음 판을 준비했다. 이기고 지는 상대에서 같이 연습하는 상대로 자리가 바뀐 것이다.
예전에 사람의 일은 "이 판을 이기는 것" 한 가지였다. 기계가 그 자리를 가져가자, 사람의 일은 그 앞뒤로 넓어졌다. 무엇을 연습할지 고르고, 기계가 둔 수가 무슨 뜻인지 풀어 읽고, 그 판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인지를 전하는 일. 가장 잘 두는 자리는 기계에 내줬지만, 그 판을 끌고 가는 일은 여전히 사람 몫이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느 단어로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사람이 졌다"로 부르면 끝나는 이야기가 되고, "역할이 옮겨갔다"로 부르면 이어지는 이야기가 된다. 먼저 진 판의 사람들이 택한 건 두 번째 단어였다.
| "졌다"로 볼 때 | "옮겨갔다"로 볼 때 | |
|---|---|---|
| 기계가 한 일 | 사람의 자리를 빼앗았다 | 사람을 한 칸 위로 밀어 올렸다 |
| 사람의 수 | 기계를 못 따라간다 | 전에 없던 수가 늘었다 |
| 기계와의 관계 | 이겨야 할 상대 | 같이 연습하는 상대 |
| 사람의 일 | 이기는 것 하나 | 준비하고, 풀어 읽고, 전하는 것 |
| 다음 이야기 | 여기서 끝난다 |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
물론 모든 게 좋아지기만 한 건 아니다. 가장 어려운 한 수는 이제 기계 안에 들어가, 왜 그게 좋은 수인지 사람이 다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이 할 일이 통째로 없어지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일은 다른 모양으로 사람 곁에 남았다.
"기계가 먼저 올라선 자리에서 사람의 역할이 옮겨간다"는 각도를 잠시 받아들이면, 몇 가지가 따라온다.
먼 거울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우리 일이 그 판 위에 있다. 우리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고, 기계가 먼저 잘하게 되는 자리는 이미 우리 현장에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그 자리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음 몇 년이 달라진다.
먼저 진 판의 사람들이 알려주는 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괜찮아, 사람은 안 사라져"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면 어디로 옮겨 앉아야 하는가"라는 실용적인 지도다.
이번 호의 결론을 당신에게 미룬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라는 질문들이다.
이미 기계가 나보다 잘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 자리를 빼앗긴 것으로 느끼는가, 아니면 한 칸 위로 밀려 올라간 것으로 느끼는가?
기계를 그냥 답 받는 곳으로 쓰는가, 아니면 내 약점을 찾고 낯선 안을 펼쳐보는 상대로 쓰는가. 둘의 차이가 1년 뒤 나를 얼마나 다르게 만들까?
내 일에서 쉬운 부분이 먼저 옮겨간다면,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을 조각은 무엇인가. 그 조각을 지금 나는 충분히 갈고 있는가?
이 호를 쓰면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건, "사람은 안 사라지니까 걱정 말라"는 안도의 이야기였다. 먼저 진 판의 사람들이 보여준 건 안도가 아니다. 그들은 진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 옮겨 앉음에는 분명한 수고와 선택이 들어 있었다.
기계가 먼저 올라선 판은, 사람을 끝내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새로 잘하게 될지를 묻는 자리였다. 잘 두는 일은 기계에 내주고, 사람은 준비하고 풀어 읽고 전하는 일로 옮겨갔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한 수는, 여전히 누군가의 손끝에 응축돼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던질 질문도 "기계가 우리를 이길까"가 아니라, "기계가 먼저 올라선 다음, 우리는 무엇을 새로 잘하게 되는가"여야 한다고 본다. 이건 게임을 만드는 우리에게 꽤 실용적인 질문이다.
먼저 진 판은 이미 답의 일부를 보여줬다. 나머지 절반은, 지금 우리가 어디로 옮겨 앉느냐에 달려 있다.
— Desk γ기계가 먼저 요약하고, 사람이 마지막에 결정하는 자리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