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안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문서를 안 남긴다. 경험이 쌓일수록 기록보다 판단이 앞서고, 그 판단의 근거는 머릿속에만 있다.
어느 팀에서 10년 경력의 기획자가 팀을 떠났다. 한 달 뒤, 그가 관리하던 수치 구조에서 이상한 패턴이 발견됐다.
누군가 이유를 찾으려 했다. 위키에는 결과만 있었다. 왜 그 수치가 그렇게 설계됐는지는 아무 데도 없었다. 결국 팀은 같은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여섯 주가 걸렸다.
이 이야기의 악당은 없다. 그 기획자가 게으른 사람도 아니었고, 팀이 문서화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하나가 빠졌다 — 가장 중요한 판단들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분은 문서를 안 쓰는 게 아니에요. 쓸 필요를 못 느끼는 거예요.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 현장에서 들은 말이 말이 이번 호의 출발점이다. 베테랑이 문서를 안 쓰는 건 귀찮아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문서화는 불필요한 번역처럼 느껴진다. 이미 아는 것을 굳이 언어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AI가 문서 초안을 대신 써주는 지금, 이 공백은 채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더 보이지 않게 덮이고 있는가.
문서화를 "안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은 다르다. 대부분의 베테랑은 쓸 능력이 있다. 그러나 쓰지 않는다. 그 이유를 네 조각으로 나눠본다.
수십 가지 케이스를 겪은 사람은 새 케이스를 보는 순간 답이 보인다. 추론 과정 없이 결론에 닿는다. 그 결론을 문서로 남기려면 이미 자동화된 과정을 다시 풀어야 한다. 피아노를 오래 친 사람에게 "손가락이 왜 그 건반으로 움직였나요?"를 설명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알지만, 언어로 꺼내기가 어렵다.
자기가 이미 아는 내용을 굳이 쓰는 사람은 없다. 문서는 항상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누군가는 추상적이고, 지금 눈앞의 마감은 구체적이다. 이 불균형이 매번 우선순위 싸움에서 문서화를 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다음 합류자가 얼마나 오래 헤매는지는, 그 자리에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손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록의 이유를 설득하기란 어렵다.
한 번 알고 나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기가 불가능해진다. 어느 수준에서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래서 쓰더라도 — 신입에게는 너무 압축되어 있고, 베테랑에게는 너무 당연한 문서가 나온다.
이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심해지는, 구조적인 함정이다.
지금 AI는 문서를 잘 만든다. 배경을 설명하고, 목차를 잡고, 문장을 다듬는다. 표면은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이 결정을 했나"는 여전히 담기지 않는다. AI가 쓸 수 있는 건 주어진 정보 안에서만이고, 베테랑의 머릿속에 있는 근거는 여전히 입력되지 않았다.
공백이 채워진 게 아니라 덮인 것이다. 깔끔하게 포장된 빈 상자처럼.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말과 글로 전달할 수 있는 것 — 형식지. 몸으로 체화되어 있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 — 암묵지.
문서화가 어려운 이유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이 대부분 암묵지이기 때문이다. "이 수치가 왜 이래야 하는가", "이 케이스에서 왜 이 판단을 했는가" — 이것들은 경험으로 쌓인 것이라, 언어로 꺼내는 순간 뭔가 빠진다는 느낌이 든다.
| 형식지 | 암묵지 | |
|---|---|---|
| 정의 | 말과 글로 전달 가능한 지식 | 경험으로 체화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 |
| 예시 | 프로세스 문서, 매뉴얼, 티켓 | 판단의 근거, 패턴 인식, 직관 |
| AI의 역할 | 잘 정리하고, 빠르게 확장한다 | 주어지지 않으면 다룰 수 없다 |
| 이전 방법 | 문서 작성, 위키 편집 | 함께 일하기, 반복 관찰, 도제식 학습 |
| 위험 | 갱신 없이 구식이 됨 | 사람이 떠나면 사라진다 |
AI는 형식지를 다루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암묵지는 여전히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AI가 문서를 써준다"는 말은, 형식지의 포장을 더 빠르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안에 담겨야 할 암묵지는 — 여전히 누군가 꺼내줘야 한다.
Note 이것은 나쁜 뜻이 아니다. 빈 형식도 없는 것보다 낫다. 다만 "AI가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생기면, 실제 암묵지 이전 노력이 줄어들 수 있다.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없는 문서가 늘어나는 역설.
이 구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결과가 달리 보인다.
이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다. 기획 쪽에서 "이 수치는 어떻게 잡은 거야?"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모르는 순간. QA 쪽에서 "이 케이스는 왜 통과시키는 거야?"가 문서에 없어서 매번 다시 판단하게 되는 경우. PM 쪽에서 오래된 기능의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팀에 딱 한 명뿐인 상황.
이 패턴에서 반복되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호의 결론을 당신에게 미룬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라는 질문들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간의 문제인가, 필요를 못 느끼는 문제인가, 아니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인가?
형식은 완성됐는데 내용이 비어 있는 문서가 팀에 있지는 않은가? 그 문서가 실제로 누군가를 도운 적이 있는가?
그 손실이 느껴지는 시점은 언제인가? 그리고 그 시점이 너무 늦지는 않은가?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기획·QA·PM 할 것 없이 현장에서 반복되는 패턴인데, 누구도 이걸 "문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원래 그런 거야", "구두로 배우면 돼", "그 사람한테 물어봐" — 그렇게 처리되다가,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때야 비로소 문제가 된다.
베테랑이 문서를 안 쓰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문서화가 이득이 되지 않는 구조의 문제다. 쓰는 사람이 얻는 것보다 나중에 읽는 사람이 얻는 게 훨씬 크다. 이 불균형이 바뀌지 않으면 —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공백은 남는다.
AI가 문서 초안을 써주는 시대는,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이기도 하다. "어떻게 쓰느냐"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쓸 마음이 생기는 조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 기록이 있으니 됐다는 착각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다만 더 깔끔하게 포장됐을 뿐이다.
— Desk γ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이 조직의 다음 행동에 실제로 연결되는 방식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