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답장 첫 줄, PR 코멘트 톤, 회의 첫 인사 — 어딘가 매끈해지고 비슷해진 자리들. AI가 답 초안을 먼저 깔고 들어가는 환경에서, 농담과 말장난과 여유의 자리는 어디로 갔는가.
슬랙 답장이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엔 그냥 "요즘 다들 바쁜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PR 코멘트에서 작은 농담이 사라졌다. 회의 시작 전 2분짜리 잡담이 줄었다. 슬랙 첫 줄이 언제부턴가 "네, 확인했습니다"로 시작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왜인지 답하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정확한 말은 쉽게 닫힌다. 불완전한 말은 어딘가를 열어둔다.
— 편집부 관찰 노트 · 2026.05이번 호는 그 "어색함"의 원인을 들여다본다. AI가 초안을 깔아주는 환경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에 대한 점검이다.
Note 이번 호에는 외부 수치나 연구 인용이 없다. 편집부가 관찰한 팀 내 일상의 작은 변화들, 그리고 그것이 던지는 질문이 전부다.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농담은 단순히 "재미있으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팀 안에서 비공식적인 말들은 훨씬 많은 역할을 했다. 우리가 그걸 의식하지 못한 것뿐이다.
PR 코멘트에 "이거 진짜 천재적인데요 (아닌 것 같아요ㅎ)"라고 쓰는 사람은, 사실 "이건 고쳐야 하지만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뉘앙스는 말장난 안에 실려 있었다. 깔끔하게 "이 부분은 재검토가 필요합니다"라고 바꾸면 더 정확해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온도가 사라진다.
슬랙 답장의 이모지 하나, 문장 끝의 "ㅋ" 한 자가 "지금 나 여유 있음", "기분 괜찮음", "이 대화 편하게 이어가도 됨"을 신호했다. 비언어 채널이 텍스트 안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회의 시작 전 2분 동안 나눈 "어제 야식 뭐 먹었어요?"가 쓸모없어 보이지만, 그 대화가 쌓여야 "이거 솔직히 좀 무리인 것 같아요"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 신뢰는 큰 대화에서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작은 비공식 교환이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다.
잡담이 줄면 업무 효율이 오를 것 같다. 실제로는 신뢰의 축적 속도도 같이 떨어진다. 효율과 신뢰는 같은 자원을 공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묶여 있다.
같은 팀 안에서만 통하는 밈, 특정 버그 이름에서 파생된 슬랙 농담, 오래된 사건에서 나온 팀 내 유행어들 — 이것들은 "우리 팀이 같은 경험을 했다"는 증거이자 그 경험을 계속 소환하는 도구다. 그 공통 언어가 얇아지면, 팀이 공유하는 역사도 얇아진다.
AI가 메시지 초안을 먼저 생성하는 흐름이 자리잡으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완성도는 올라갔는데, 개성이 희미해졌다.
슬랙 메시지 하나를 쓸 때 AI 초안을 받으면, 대부분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핵심 정보를 잘 담고, 오해의 여지가 없다. 그 초안을 그대로 보내거나 조금만 다듬으면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쓰는 사람이구나"라는 감각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완벽한 답장은 대화를 닫는다. 불완전한 답장은 다음 줄을 연다.
— 편집부 관찰 노트 · 2026.05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대화는 완성된 문장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조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 이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다시 물어야 하는 슬랙 메시지가 오히려 대화를 살아있게 만든다. AI가 그 여백을 채워버리면, 대화는 매끄러워지는 동시에 짧아진다.
이모지도 비슷하다. 전에는 이모지를 어떤 타이밍에 쓰느냐가 그 사람의 감각을 드러냈다. 지금은 AI가 제안하는 이모지를 고르는 행위가 늘었다. 이모지가 없어진 게 아니라, 이모지가 누구의 것인지가 흐려졌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몇 가지가 따라온다.
게임을 만드는 팀에서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겁다. 게임은 만드는 팀의 분위기가 산출물에 배어드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팀이 웃으면서 만든 게임과, 서로 조심하며 만든 게임은 어딘가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플레이어는 느낀다.
기획 문서 피드백, 아트 리뷰 코멘트, 빌드 테스트 후 슬랙 공유 — 이 모든 자리에서 비공식 톤이 살아있을 때, 팀원들은 "지금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구나"를 느낀다. 그 감각이 매주 조금씩 쌓여야 프로덕트에 일관된 결이 생긴다.
그러니 여기서 질문은 "AI를 쓰지 말자"가 아니다. AI 초안이 밀어낸 자리를 의도적으로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효율을 위해 깎아낸 여백이 실은 팀의 온도를 유지하던 공간이었을 수 있다.
회의 시작 전 2분 잡담, PR 코멘트 끝에 붙이는 짧은 농담 한 줄,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보내는 슬랙 메시지 — 이것들이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실은 팀을 팀으로 만드는 것들일 수 있다.
답을 정해두지 않았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보길 바라는 질문들이다.
달라졌다면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그 변화가 편한가, 아니면 어딘가 아쉬운가? 달라진 게 아니라면, 우리 팀은 어떻게 비공식 톤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있다면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뭔가 달라진 걸 느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를까? 그리고 그게 문제인가, 아닌가?
팀 안에서만 통하는 밈이나 유행어, 특정 버그나 사건에서 나온 내부 표현이 있는가?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게 요즘도 계속 생기고 있는가?
이번 호는 "AI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편집부도 매일 AI를 쓰고, 그 효율을 체감하며,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다만 효율을 위해 깎아낸 것들 중에,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중요하던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이번 호의 핵심이다. 농담, 잡담, 불완전한 문장들 — 이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효율과 온도는 트레이드오프가 아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효율이 온도를 조금씩 밀어낸다. 지금 우리 팀에서 농담이 줄었다면, 그게 단지 바쁜 탓인지, 아니면 뭔가 구조가 바뀐 탓인지 — 한 번쯤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이 호를 읽고 슬랙에 농담 한 줄 더 보내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Desk γ회의 시작 직후 가장 먼저 말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