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모든 질문에 즉답을 주는 시대. 굳이 안 알아두는 자리, 일부러 비워두는 자리 — 거기서 자라던 무언가가 있었다.
요즘은 뭔가 모르면 10초 안에 답이 온다. AI 채팅창에 질문을 넣으면 된다. 틀린 답이 섞여 있더라도, 방향은 잡힌다.
편리하다. 그런데 편집부는 요즘 이 편리함 앞에서 가끔 멈추게 된다. 혹시 뭔가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는 채로 두는 자리 — 그 자리에서 자라던 무언가.
"검색하기 전에 혼자 생각하던 그 짧은 시간이 요즘은 없다."
— 편집부 내부 메모 · 2026.05이번 호는 AI와 멀어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르는 상태 자체에 어떤 쓸모가 있었는지를 한번 들여다보자는 이야기다. 그 쓸모를 모른 채 전부 즉답으로 채워가면, 나중에 어디서 문제가 생길지.
Note 이 호는 외부 데이터나 연구 인용 없이, 편집부의 관찰과 질문만으로 썼다. 수치보다 경험이 더 직접적으로 닿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모르는 게 생기면 당장 해결이 안 됐다. 검색을 해도 원하는 답이 딱 나오지 않고, 책을 찾아보거나 동료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 과정이 느리고 번거로웠다. 그런데 그 느림 속에서 생기는 것들이 있었다.
답을 바로 못 얻으니 일단 혼자 생각해 본다. "이 기능이 왜 이렇게 돌아갈까?" 하고 이유를 상상한다. 틀릴 때도 많다. 하지만 그 상상 자체가 내 안에 구조를 만든다. 나중에 정답을 봤을 때 "아, 내가 거기서 틀렸구나" 하고 손에 잡힌다. 정답만 받았을 때와는 다르게 몸에 붙는다.
즉답이 없으니 질문을 더 오래 굴린다. "왜 이게 안 되지?"가 "애초에 이게 맞는 방향인가?"로 바뀐다. 문제 자체를 다시 보게 된다. 빠른 답은 이 단계를 건너뛰게 만든다. 답은 줬는데, 더 중요한 질문을 못 만든 셈이 된다.
혼자 못 풀면 동료에게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을 말로 정리하게 되고, 상대방의 각도를 새로 얻는다. AI에게 물으면 즉시 답이 오지만, 그 대화는 나 혼자서 끝난다. 모름이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계기였다는 것을, 요즘은 좀 잊고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 어떤 모름은 서두르지 않아도 됐다. 며칠 지나면 다른 맥락에서 우연히 답이 보이거나, 잠을 자고 나면 아침에 갑자기 연결이 됐다. 즉답 버튼이 생기면서 이 "기다리는 모름"이 사라졌다. 빠르게 채워졌으니 뇌가 그걸 붙들고 굴릴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모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모르는 것과, 굳이 안 알아두기로 한 것. 이번 호가 이야기하는 건 두 번째다.
우리 팀 안에서도 이 두 번째 모름을 의도적으로 고르는 순간들이 있다. 편집부가 관찰한 몇 가지 장면이다.
공통점이 있다. 이 선택들은 다 느리게 가는 쪽을 고른 것이다. 그런데 그 느림이 뭔가를 만든다. 내 판단력, 내 구조 이해, 내 집중 — 이런 것들이 자라는 자리다.
즉답이 없던 자리에서 길러진 것들이 있었다. 그걸 굳이 지켜두는 선택이, 지금 더 드물어졌다.
— 편집부 관찰 · 2026.05모르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단순히 "편해진다"는 것 이상의 변화를 만든다면, 그 변화가 어디서 나타날지를 생각해보자.
게임 개발 현장에서 이 이야기는 꽤 구체적으로 닿는다. 우리는 매일 수십 가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밸런스 수치, 연출 선택, 기술적 구조, 플레이어가 어디서 막힐지. 그 판단들은 내가 쌓아온 감각에서 나온다.
AI가 그 판단을 도와주는 건 좋다. 그런데 도움을 받는 것과, 판단 자체를 넘기는 것은 다르다. 판단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 감각이 자랄 기회가 줄어든다. 몇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이 영역을 직접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흐릿해진다.
그래서 이번 호가 권하는 건 "AI를 덜 쓰자"가 아니다. "어느 자리는 의도적으로 비워두자"는 것이다. 내가 직접 부딪혀야 자라는 영역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영역만큼은 즉답을 일부러 늦추는 것.
현장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이 있다.
이것들은 전부 조금 느린 선택이다. 효율만 따지면 AI한테 바로 묻는 게 낫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일은 결국 "내가 이걸 어떻게 보는가"에서 나온다. 그 눈은 즉답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온 시간에서 자란다.
이번 호의 결론은 열어두었다. 답은 당신 쪽에 있다. 점심 자리에서 한 번쯤 꺼내볼 만한 질문들이다.
의도적으로든 어쩔 수 없이든 — 모른 채로 일을 이어갔을 때, 그 모름이 어디서 도움이 됐거나 반대로 발목을 잡았는지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가?
AI 도구들이 자리를 잡기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동료에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묻는 횟수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 변화가 팀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AI에게 맡겨도 되는 것과, 직접 해봐야 하는 것 — 이 경계를 나는 어떻게 그어두고 있는가? 아직 그 경계를 생각해본 적 없다면, 지금 어디에 그어야 할까?
이번 호를 쓰면서 편집부 스스로도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초고를 쓰다가 막힌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AI에게 물어보려다가 — 잠깐, 하고 멈췄다. 그냥 한 번 더 혼자 붙들고 있어보자고. 그렇게 5분쯤 지나니 방향이 잡혔다. 이번 호가 말하려는 것을 그 5분이 직접 보여줬다.
이 호는 AI를 나쁘게 보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AI를 더 잘 쓰기 위해서, 모름의 자리를 지키자는 이야기다. 즉답에 너무 익숙해지면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줄어들고, 결국 AI에게 더 얕은 질문만 하게 된다. 모름을 오래 굴릴 수 있는 사람이, AI도 더 잘 쓴다.
어떤 모름은 빨리 채울 필요가 없다. 그 자리를 조금 더 두는 것도 — 충분히 좋은 선택이다.
— Desk γAI가 옵션을 늘려줄수록, 결정이 오히려 막히는 이유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