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013  ·  Essay 2026-04-30 / Thu
Issue 013 — Essay · 약 7분

공예가처럼
일한다는 것.

도구가 많아질수록 손으로 만드는 감각이 흐려진다. 효율로 잴 수 없는 그 시간 — 재료에 손을 대보는 시간 — 을 지키는 이유에 대하여.

FORMATEssay BYDesk γ DATE2026-04-30
나무 작업대 위에 공구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옆 화면에 게임 레벨 에디터가 열려 있다. 손끝의 감각과 화면 속 구조가 같은 공간에 머문다.
Cover · Issue 013 — 공예가처럼 일한다는 것 · TSTF Magazine 2026
Previously · Issue 012 "배운 것의 유통기한" — 닳는 속도가 다른 두 종류의 지식에 대하여.
Lede · 들어가며

빠르게 만들수록 뭔가가 빠져나간다.
그게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손을 쓰고 있을 때는 분명히 느껴지는 것.

AI 도구가 초안을 뽑고, 스크립트가 반복 작업을 처리하고, 자동화 파이프라인이 빌드를 돌리는 동안 우리가 직접 손을 대는 시간은 줄어든다. 나쁜 일이 아니다 — 그 시간이 줄어든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줄어든 시간 안에는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한 단락을 직접 쓰면서 생기는 감각, 메시를 직접 고치면서 알게 되는 것, 코드를 한 줄씩 읽으면서 보이는 냄새 같은 것들. 효율로 환산하면 아까울 수 있는 그 시간들.

이 글은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왜 사라지고, 왜 지킬 만한지.

항아리를 빚는 사람은 흙의 결을 손끝으로 읽는다. 온도, 수분, 두께 —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손이 닿는 순간에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몸에 들어온다. 그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물만 보면, 비슷하게 생긴 항아리를 만들 수 있어도 왜 이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만들게 된다.

이 감각을 우리는 게임 개발 현장에서도 본다. 레벨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구간을 직접 걸어 다닐 때 생기는 것이 있다. 수치상 통과 가능한 경로가 실제로 어떻게 느껴지는지, 카메라가 꺾일 때 어떤 불편함이 오는지, 플레이어가 막힐 법한 지점이 어디인지 — 걸어봐야 안다. 데이터로 잡히기 전에 손이 먼저 느끼는 것들이다.

그 "걸어보기"의 시간은 효율 측면에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플레이테스터가 있고, 피드백 시스템이 있고, 히트맵으로 막힌 구간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직접 걸어보는 사람은 뭔가를 다르게 알게 된다. 그 앎은 데이터로 들어오는 앎과 종류가 다르다.

손이 닿는 시간 안에서 알게 되는 것은, 데이터로 들어오는 것과 종류가 다르다.

— 이번 호 핵심 관찰

캐릭터 모션 작업을 하는 사람은 한 프레임씩 타이밍을 본다. 오버슈트가 한 프레임 빠른지 느린지, 착지 직전의 압박감이 충분한지 — 이것들은 재생해서 보는 것과 한 프레임씩 건드려보는 것이 전혀 다른 경험이다. 자동화 도구가 기본 모션을 잡아주더라도, 그 위에 감각을 올리는 작업은 여전히 손이 필요하다. 무엇이 어색한지를 설명하기 전에 손이 먼저 반응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코드 리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빠르게 훑으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코드를, 두 번 더 읽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에 보이지 않던 것이 두 번째에 보인다. 변수 이름 하나, 분기 조건의 순서 하나 — 당장 동작에 영향은 없어도 세 달 뒤에 이 코드를 다시 열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들. 이 "두 번 읽기"도 설명하기 어려운 습관이다. 프로세스 문서에 쓰기도 어렵고, 측정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 습관이 쌓인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코드베이스는 달라 보인다.

Note

이 감각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빠르게 처리하면 사라지는데, 느리게 머물면 생긴다. 그리고 한 번 생기면 다음 작업에 남는다.

이걸 "비효율"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결과물 품질에 영향을 주는데 비효율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효율의 언어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걸어보기 30분이 플레이테스트 3회 분량의 인사이트를 준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까 이건 효율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효율로는 잴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장인이 대량 생산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장인은 다른 기준으로 일한다 — 그리고 그 기준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대량 생산이 복제할 수 없는 질감을 갖는다.

AI 도구가 많아질수록 이 감각을 잃기 쉬운 구조가 된다. 초안이 빠르게 나오면 직접 처음부터 써보는 경험이 줄어든다. 레이아웃이 자동으로 잡히면 요소 하나하나의 위치를 손으로 결정해본 경험이 줄어든다. 코드가 자동으로 생성되면 그 구조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를 스스로 고민해본 경험이 줄어든다.

결과물은 빠르게 나온다. 품질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 어디가 약하고 어디가 강한지를 파악하는 감각이 천천히 흐려진다. 재료를 직접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재료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이게 위기처럼 들리면 — 꼭 그렇지는 않다. 감각은 다시 깨울 수 있다. 의도가 있으면.

도구를 더 많이 쓸수록, "손을 대보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 이번 호 제안

레벨 디자이너가 히트맵을 보기 전에 한 번 직접 돌아보는 것. 모션 아티스트가 자동 생성된 기본 포즈를 손으로 한 번 건드려보는 것. 리뷰어가 CI가 통과됐어도 코드를 두 번 읽는 것. 이것들은 "옛날 방식"이 아니다. 도구가 줄 수 없는 것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 시간이 전체 작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아도 된다. 하지만 아예 없어지면 — 그때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뭔가 아쉬운데 무엇이 아쉬운지 모르는 결과물. 그게 그 빈자리의 모습이다.

공예가는 효율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효율로 잴 수 없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다른 위치에 서 있다. 그 위치를 게임 개발 현장에서 지키는 것 — 그게 이번 호가 말하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 우리가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 더 빠른 길을 두고 직접 걸어보는 방식을 고르고 있다. 그게 느린 것처럼 보여도 그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 그 이유가 "비효율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 안에 알 수 있는 게 있어서"라는 걸 아는 사람들.

그 자리가 팀 안에서 지켜지고 있는지 — 한번 돌아볼 만하다. 빠르게 가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천천히 손을 대보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같은 팀 안에 있을 때, 결과물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남는다.

Editor's Note

이번 주, 자신이 직접 손을 대는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 자리가 작을수록 더 소중하게 여겨도 된다.

— Desk γ
Previously · Issue 012 "배운 것의 유통기한" — 닳는 속도가 다른 두 종류의 지식에 대하여.